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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프로파일]"테크에 진심" 글로벌 투자 루키 여건희 팀장지난해 수익률 67.4%, 롱온니 최상위권…성과와 안정성 모두 잡았다

황원지 기자공개 2025-02-27 15:30:28

이 기사는 2025년 02월 25일 08시1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여건희 매니저는 VIP자산운용에서 최연소로 팀장을 단 인물이다. 올해로 만 스물아홉이 되는 그는 1996년생으로 2년 전 팀장을 달았다. 처음에는 전 팀장의 공석을 채우는 인사였지만, 지난해 VIP운용에서 수익률 1위를 기록하며 이제는 글로벌투자팀을 이끄는 '루키'로 통한다.

해외 투자에서도 VIP만의 색깔을 지켜가고 있다. 좋은 기업에 장기투자한다는 원칙이다. 좋은 기업을 골라 선제적으로 투자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면서도, 현금 비중을 충분히 둬 비상시를 대비하는 꼼꼼함도 엿보인다. 팀장이라는 직책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무게를 이겨내고 성과로 보답하겠다는 포부다.

여건희 VIP자산운용 글로벌주식팀장

◇성장 스토리: 글로벌 기술기업에 '열광'... 매니저는 2년차 '신성'

원래 주식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테크광(긱, Geek)’에 가깝다. 외교관 출신 부모님을 따라 해외에서 16년을 넘게 살면서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친숙하게 접했다. 미국이 아닌 외국에서도 아마존을 통해 물건을 사고, 초창기 유튜브를 경험하면서 시야를 넓혔다. 초등학생 때에는 페이스북으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폰을 가지고 싶어 휴대폰 카탈로그를 매일 들여다보며 연구하기도 했다.

운용업계에 발을 들인 건 대학교를 다니면서다.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하던 중 VIP자산운용의 공고를 봤다. 글로벌 슈퍼그로스 펀드의 인턴에 혁신적인 미국 기술기업을 좋아하는 인재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기술 기업을 분석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경험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 지원서를 냈다.

글로벌 테크 기업에 대한 리서치를, 모두 영어 기반으로 하라는 주문에 여 팀장은 오히려 열광했다. 여 팀장은 “외국에 오래 살아 사실 한국어보단 영어가 모국어에 가까운 편”이라며 “좋아하는 테크 기업에 대해 자세한 보고서를, 영어로 올려도 된다니 나를 위해 만들어진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운용을 하는 매니저의 길을 걸은 건 2023년부터다. 당시 팀을 이끌던 권이레 팀장이 육아휴직으로 잠시 떠나면서다. 애널리스트였던 여 팀장은 자신이 아직 운용역으로서는 부족한 게 많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최준철 대표가 전폭적인 신임을 보내며 VIP의 최연소 팀장이 탄생했다. 여 팀장만큼 VIP 스타일로, 해외 주식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물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여 팀장은 자리에 부담이 컸지만 최 대표의 신임에 할 수 있다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최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불러서 미식축구 스타 톰 브레이디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말했다. 톰 브레이디는 신인 시절 주목받지 못하던 무명 선수에 불과했지만, 선발이 부상을 당해 대타로 뛰었던 경기에서 눈부신 성적을 보이며 미식축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다. 여 팀장은 “넥스트 맨 업(Next Man Up)이라고 하죠. 제가 나서야 하니 나섰고, 부족한 실력은 노력으로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트랙레코드: 누적수익률 163%, 'VIP Global Super Growth'

여 팀장이 맡은 펀드는 ‘VIP 글로벌슈퍼그로스’다. 이 펀드의 투자 지역은 해외로, 기술의 진보를 선도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 경쟁우위를 쌓으며 성장하는 회사에 장기투자한다. VIP운용의 시작을 지원했던 고 김정주 회장의 넥슨이 투자자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회사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목적으로 2020년 1월 만들어졌다.

2023년 2월 여 팀장이 운용을 맡기 시작했을 때, VIP글로벌슈퍼그로스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3년 운용 성과가 0% 수준이었다. 2020년 공격적인 운용으로 누적 수익률 65.3%를 기록했으나, 2021년부터 시장이 어려워지며 펀드 수익률도 악화됐다. 2021년 1년 수익률이 마이너스(-)7%를 기록했고, 2022년 -43.9%를 냈다. 22년 미국 증시가 나쁘기도 했지만, 지수 대비로도 성과가 악화되면서 2020년에 벌었던 돈을 대부분 토해냈다.

여 팀장은 펀드를 맡은 후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뒀다.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를 새롭게 담았고, 방어적인 종목인 유니버셜 뮤직 같은 기업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여 팀장은 “원래 저희가 빅테크를 거의 안 들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시장이 무너질 때 영향이 더 컸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종목 수 축소 및 투기성 종목을 편출을 진행했고, 지역 및 산업에서도 다각화에 집중했다.

시장 상황을 고려해 현금 비중도 약 15% 수준까지 높였다. 여 팀장은 “일주일 동안 지수가 15% 넘게 빠진 적이 있을 정도로 변동성이 강한 시장”이었다며 “현금을 많이 보유해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빠졌을 때 추가 매수하는 전략이 맞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현금을 달러화로만 가지고 있어도 원화로는 수익이 나는 상황이라, 현금을 강한 수비수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여 팀장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VIP글로벌슈퍼그로스의 2023년 연간 수익률은 80.1%를 기록했다. 2024년에도 1년 수익률 67.4%로 롱바이어스드 전략 중 최상위권을 휩쓸었다. 누적 수익률도 회복해 1월 말 기준 163%를 넘겼다. 포트폴리오의 10~15%가 현금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투자 스타일: 나무보다는 숲, 확률적 사고로 포트폴리오 조절

여건희 팀장은 본인을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스타일이라고 소개했다. 역사를 좋아한다는 그는 “역사를 보면 흥망성쇠의 고정된 흐름이 있는데, 그 핵심에는 기술의 진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면 앞으로의 인류의 발전 방향도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렇게 발전하는 방향을 가늠해 투자도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인 기준으로는 이 기업이 내가 지불하는 가격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여 팀장은 “예를 들어 아이폰의 경우 내가 지불하는 금액은 150만원 정도”라며 “하지만 실제로 아이폰을 통해 뉴스를 보고,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는 15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가치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 그 기업은 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단순히 꿈만 좇는 건 아니다. 그는 펀드매니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로 확률적 사고를 꼽았다. 기업이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미래 시나리오를 가늠할 줄 하는 능력이다. 먼저 시대 흐름을 타서 급격하게 성장하거나, 규제 때문에 위축되는 등 여러 시나리오를 채운다. 이후 시나리오별 실현 가능성을 판단한다. 여 팀장은 “확률적 사고를 통해 포트폴리오 내 비중을 조절해 위험을 분산한다”고 말했다.

유연한 운용을 위해 많은 지식을 흡수한다. 여 팀장은 소문난 다독가다. 그는 매니저라면 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채우다 보면 내 예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으로 지식이 있어야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기에 항상 책을 많이 읽으려 한다”고 말했다.

숲을 보는 스타일인 만큼 장기투자도 필수다. VIP글로벌슈퍼그로스 펀드는 2022년 9월 엔비디아가 주당 12달러 하던 시절 펀드 내 엔비디아의 비중을 10% 이상으로 늘렸다. 다음해 챗GPT가 나온다는 걸 알았던 건 아니다. 그는 “AI가 언젠가는 큰 역할을 할 것이고, 엔비디아가 그 하드웨어를 독점하고 있다는 정보에 기반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투자를 통해 성과를 내는 VIP자산운용에서만 가능한 전략이었다고 설명했다.


◇향후 계획: "초장기 성장주 투자, 한국의 베일리 기포드 되겠다"

여건희 팀장은 당장은 내실을 다지는 데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여 팀장은 “성과는 좋지만, 아직 운용을 본격적으로 맡은 지 2년 정도”라며 “더 확장하기 전에 내부 리서치 팀과,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VIP자산운용의 글로벌투자팀에는 현재 여 팀장 외에 권이레 수석운용역, 손승민 운용역, 유혁준 운용역, 공서현 운용역이 함께하고 있다.

여 팀장은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과 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직 바깥의 변화와 발전 속도가 조직 내의 변화와 발전 속도보다 빠르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AI 같은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데, 그를 활용하는 내부의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뒤쳐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수익률을 올리는 것보다 조직의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앞으로 올 수도 있는 약세장에도 대비하고 있다. 그는 “제가 운용을 맡은 2년은 미국 증시가 대호황이었던 시기”라며 “아직 겪지 못한 약세장도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2022년의 실패에서 얻은 경험은 있다. 그는 “약세장이 오더라도, 포트를 안정화해둔 만큼 반토막 나는 일을 없을 것”이라며 “잠시 승률이 떨어지더라도 2022년처럼 배울 것이고, 더 좋은 펀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베일리 기포드가 되는 게 꿈이다. 베일리 기포드는 영국의 자산운용사로 초장기 성장주 투자를 전략으로 한다. 여 팀장은 “베일리 기포드는 2005년부터 아마존에 투자했다. 오래 전부터 뿌려뒀던 씨앗을 초장기로 거두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투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VIP자산운용에서만 이 방식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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