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WA가 쏘아올린 VC 펀딩난]'일률 400%' 적용, 민간 LP 출자 급감…모험자본 타격①바젤3·CETI 강화 속 '투기적 거래' 취급…벤처펀드 결성 3년 연속 감소세
최윤신 기자공개 2025-05-14 09:25:23
[편집자주]
RWA(위험가중자산) 강화로 국내 벤처캐피탈(VC)의 펀딩 혹한기가 길어지고 있다. 바젤3 규제 도입에 따라 국내 은행계 금융회사는 벤처펀드 출자에 '투기'에 준하는 400%의 RWA를 적용하게 됐다. 'RWA 관리'가 금융지주의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가 급격히 감소했고 벤처캐피탈은 펀드레이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벨이 RWA 가중치 변동으로 인해 벤처캐피탈이 겪게 된 어려움을 들여다보고 제도 개선의 방향성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5년 05월 13일 10시1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벤처투자 시장의 펀드레이징 혹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모태펀드를 비롯한 정책금융기관은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를 늘렸지만 민간의 출자가 뒷받침되지 못하며 펀드 결성에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벤처캐피탈(VC)들의 속상함은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 산정방식으로 향하고 있다. 출자를 거절하는 금융회사 중 열에 아홉이 'RWA 관리'를 이유로 들고 있기 때문이다.국제결제은행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의 바젤3 규제기준이 도입되며 은행계 금융기관은 벤처펀드 출자에 기존 대비 2배 이상 높아진 400%의 RWA 가중치를 적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체 자금 운용에서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기 때문에 당장 영향이 크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은행의 자본비율을 더 높게 유지하도록 지도하면서 은행계 금융회사들의 벤처펀드 신규출자가 확 줄어들었다. VC들은 벤처펀드 출자에 대한 RWA 가중치가 과도하다고 여기지만 특별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금융기관 벤처펀드 출자 전년대비 1.3조 줄어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집계한 2024년 국내 벤처투자 펀드결성 세부현황에 따르면 2022년 17조6401억원까지 늘어났던 벤처펀드(벤처투자조합과 신기술사업투자조합 합산) 결성금액은 2023년 13조328억원으로 줄어들었고, 지난해 10조5550억원까지 감소했다.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민간 출자자들의 출자금액이 줄어든 게 펀드레이징 금액이 줄어든 이유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모태펀드와 성장금융의 출자금액이 전년대비 늘어나며 정책금융기관의 벤처출자는 2023년 대비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민간 LP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며 신규 벤처펀드를 결성하는 데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민간부문의 모든 주체가 전년 대비 벤처펀드 출자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양적 완화로 2022년까지 벤처펀드 출자가 늘어나는 흐름이 이어졌으나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기조가 시작되며 대다수 출자자들이 벤처 출자를 꺼리는 상황이 됐다.
플랫폼 기업을 비롯해 높은 몸값을 인정받던 비상장기업들의 밸류에이션 조정이 시작되며 벤처펀드 수익률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채권 등 고정수익형 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한 영향이다.

민간부문에서 2023년 대비 출자금액이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주체는 연기금과 공제회였다. 다만 이들이 전체 벤처펀드 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으로 그리 크지 않다. 또 주로 대형 VC의 펀드를 대상으로 출자하기 때문에 중소형 VC 출자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지난해 하반기 진행한 출자사업의 펀드레이징 결성이 올해 초 대부분 이뤄진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출자금액의 감소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바라본다.
VC업계에선 금융기관의 출자가 줄어든 걸 벤처펀드 결성이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실제 산업은행을 제외한 금융기관의 출자금액은 연기금·공제회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은 그간 벤처펀드 투자금액 규모의 30%가량을 책임져온 주체였다. 이들이 출자 금액을 줄인 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의 2024년 벤처펀드 출자금액은 2조8721억원으로 2023년(4조2205억원) 대비 1조3484억원 줄어들었다. 4조9021억원을 출자했던 2022년과 비교하면 감소폭은 2조300억원에 달한다.
금융기관의 출자금액이 일반법인 대비 훨씬 큰 폭으로 줄어든 것에는 다른 사정이 있다는 게 VC들의 시각이다. VC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금융권에 출자를 요청할 때는 출자심사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는데, 지난해부터는 'RWA 한도가 다 찼다'고 얘기하며 검토조차 하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고 토로했다.
◇한 순간에 2.5배 늘어난 가중치, RWA 관리 국면에서 '축소 1순위'
RWA 이슈가 생겨난 건 지난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바젤3 규제 때문이다. 바젤3는 BCBS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 고안한 은행권 리스크 규제다. 2013년부터 순차 도입됐고, 2023년부터 전면 도입이 이뤄졌다.
바젤3가 도입되며 RWA 가중치를 적용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금융당국은 바젤3 도입을 준비하던 지난 2020년 4월 8일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을 개정해 새로운 RWA 가중방식을 적용했다. 바젤3의 기준을 준용해 이를 국내법에 걸맞게 적용하는 과정이었다.
주식의 익스포저를 다루는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 별표3에는 "주식 익스포져에 대한 위험가중치는 250%를 적용하되, 매매 목적의 비상장 주식 거래에 대해서는 400%의 위험가중치를 적용한다"는 내용이 더해졌다. 400%의 위험가중치를 적용하는 예시로는 '벤처캐피탈이나 자본이득을 위한 투기적 비상장 주식 거래 등 포함'이라는 문구가 명시됐다.

이에 따라 벤처펀드 출자에는 400%의 RWA 가중치가 일괄 적용된다. 법 개정 당시에는 바젤3를 조기도입한 일부 은행에 국한됐으나 2023년 1월부터 모든 은행이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은행은 벤처펀드에 출자할 때 이 규정을 도입하기 이전보다 2배 이상의 RWA 부담을 안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규정이 도입되기 이전까지는 벤처펀드 출자의 RWA 가중치는 150%가 적용됐던 것으로 파악된다.
VC들이 RWA 가중치 증대로 인한 어려움을 본격적으로 체감한 건 지난해부터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CET1(Common Equity Tier 1)'을 13%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권고한 게 발단이 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CET1은 RWA 대비 보통주 자본 비율을 나타내는 비율로 이를 높이기 위해선 자본을 늘리거나 RWA를 줄여야 한다.
바젤3에서 시중은행에 요구하는 법정 CET1 비율은 10.5%다. 금융당국은 그간 여기에 손실흡수 버퍼를 적용하라는 차원에서 규정보다 높은 12% 이상의 CET1 비율을 충족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들어 이 권고 수준을 13%가량으로 올려잡았다. 이에 따라 은행계 금융지주회사의 RWA 관리에 불똥이 떨어졌고, RWA 가중치가 높은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가 가장 먼저 줄어들었다는 게 금융업계의 설명이다.
비단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젤3 규제는 기본적으로 연결기준으로 적용된다. 은행이 직접 보유한 자산뿐 아니라 자회사, 특수목적법인(SPC), 투자조합 등 연결된 모든 실질적 리스크를 포함하기 위해서다. 벤처펀드의 매칭자금을 주로 대던 캐피탈사들이 벤처펀드를 외면하게 된 배경이다.
VC업계에선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에 대한 RWA가 400%로 일괄 적용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PEF)에 출자하는 경우 투자 자산의 구성에 따라 RWA를 차등 적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벤처펀드는 이런 고려 없이 일괄적으로 높은 비중이 적용된다는 게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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