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6월 10일 08시0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리테일 시장이 뜨겁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투자증권의 리테일 센터가 달아오르고 있다. 증권사 전반은 오프라인 센터를 통폐합하기 바쁘고 그나마 여윳돈을 가진 자산가에 집중하고 있다. 이 와중에 보란듯이 상품을 팔고 있는 게 한국증권이다. 최근 몇 달 사이 1조원에 가까운 물량을 소화했다고 한다.세일즈 비결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증권 내부에서도 상품 선별 역량과 인센티브 제도 등 서로 다른 이유를 정답으로 꼽는다. 도무지 뾰족한 수가 없다고 보는 타사에서는 임직원에 영업 압박을 가한 결과라며 감정 섞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답안으로 와닿는 건 지금까지 하우스 리테일을 이끌어온 주역들이 제시하는 분석이다. 4년 전 증권가를 뒤흔들었던 결단이 현재 판세를 결정지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2021년 6월 한국증권은 전례 없는 보상책을 발표했다. 부실 사모펀드 가입자에게 투자원금 전액을 보상해주겠다고 했다. 라임, 젠투, 팝펀딩 등의 피해 원금을 모두 복구하는 비용은 1584억원에 달했다. 당시엔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 뒤에 숨거나 다른 금융사의 동향을 살피는 데 급급한 게 업계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국증권은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동종업계의 원망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느닷없이 전액 보상안을 내놓자 같은 상품을 팔아치웠던 업계의 다른 대책은 설득력을 잃었다. 투자자의 투자 책임이란 원칙이 무너졌다는 날선 비난도 이어졌다. 그러나 깜짝 발표의 파급력은 큰 흐름을 만들었고 결국 하나둘 그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국내 증권사가 사모펀드 사태로 잃어버린 건 단연 신뢰였다. 오랜 기간 얼굴을 마주하며 쌓아온 믿음이 허망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한국증권은 이례적인 전액 보상 카드를 내밀었고 그 덕에 형세를 단번에 뒤집었다. 오히려 "딴 곳과 다르다"는 인식을 남기며 더 큰 신뢰를 얻는 계기를 마련했다.
선점 효과는 확실했다. 아직까지 현장에서 회자되는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사모펀드로 골머리를 앓던 한 재력가는 100% 보상 뉴스를 접한 후 곧장 한국증권 창구로 향했다. 그 뒤 여러 금융사에 예치해온 수백억원을 전부 맡기기로 했다. 다른 증권사도 전액 보상안을 발표하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떠밀린 듯한 모양새여서 진정성이 덜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최악의 위기는 강력한 신뢰 마케팅으로 변모해 나갔다. 증권업계는 새로운 상품을 찾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 비대칭이 사라진 시기에 차별된 프로덕트를 경쟁력으로 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을 파느냐보다 누가 파느냐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다시 돌아봐도 그 당시 1500억원 대의 비용은 감내하기가 어려운 액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한국증권은 리테일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제 반기 이익 1조원 시대를 열 기세다. 어렵게 되찾은 신뢰는 결국 제 값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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