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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desk]누굴 위한 '정년 연장'인가

이승우 산업1부장공개 2025-11-17 08:11:07

이 기사는 2025년 11월 13일 07: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연말은 풍성함과 잔인함이 공존한다. 가을에 쏟아낸 곡식으로 따뜻한 아랫목을 찾기도 하지만 이듬해를 위한 소멸과 퇴장이 필요한 역설이 먹히는 시즌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 논공행상과 더불어 인력 조정이 한창이다. 영원히 함께 담소를 나눌 것 같았던 기업인들이 하나 둘 퇴장의 무대에 올라섰다.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 받아들이는 케이스도 있고, 연락하기조차 난처한 퇴장도 있다. '순리'에 맞는 퇴장도 월급쟁이에겐 복(福) 중 하나인가보다.

그 와중에 정부가 샐러리맨들에게 다양하고 다각도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화두를 하나 던졌다. '정년 연장'.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장년층의 사회 생활을 몇년간 유예시켜주는 정책이다.

일감으로는 좋은 방향이다. 하지만 만사가 그렇듯 장단은 있다.

공무원과 유관기관 그리고 때맞게 승진하면서 직장생활을 무난히 치러낸 분들에게는 제격이다. 단 1년이라 할지라도 경제적·사회적 공백을 메우는 건 행복이다.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 시간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다르게 받아들일 직장인들도 많다.

민간회사에서 60대를 바라보는 직장인은 대체로 두 부류다. 계약직인 고위 임원이나 대표이사 정도가 돼 있거나, 바늘구멍을 뚫지 못한 채 나머지 정년을 힘겹게 채우고 있는 분들이다. 확률상 후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정년을 앞둔 만년 부장은 또 얼마나 될까.

후자들은 안팎의 시선에 눈감고 귀닫으며 버텨내기의 달인이 된 사람들이다. 모 그룹에는 50대에 임원을 달지 못한 부장들이 정년을 함께 채워 나가자며 모임 결성으로 결의를 다진다고 한다. 정년까지 직장생활을 해냈다는 건 가족을 포함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내밀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 그리고 지난 세월의 공허함을 메우는 자존감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더 하라고? 은퇴의 명분이 공식적으로 유예당하는 건 아닐까.

국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년 연장은 정부 비용을 기업에 전가하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정부가 기업들에게 장년들을 좀 더 품고 있으라는 뜻이다. 부동산 임대소득을 불경스럽게 보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등 공적연금은 개선하지 않은 채 기업들에게 사회적 비용을 부담지우는 것이다.

효율성으로 점철돼 있는 기업은 정년 연장의 의도 또는 목표와는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정년 그 이전에 구조조정을 더 빡세게 하지 않을까. 아니면 사람을 더 뽑지 않으려 하지 않을까. 모 연구소는 정년 1년 연장을 하게 되면 대기업들이 치러야 할 비용이 일년에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까지 늘어난다고 보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산업에 기웃거리고 있는 기업들이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빤히 보인다.

정년 연장이 국가 경제에 그리고 기업, 취업 시장에서 소외된 청년들에게 생각보다 만만찮은 영향을 준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 고령화 시대 대비는 금융과 문화 그리고 복지 문제 등 다른 각도에서 먼저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모든 걸 기업들에게 던지지 말고.

2025년 말 월급쟁이들에게 던져진 역설적인 키워드 '정년 연장'. 처한 상황에 따라 걱정하는 이들과 설레는 이들이 엇갈린다. 어찌됐든 서울 아니어도 좋다, 뭐 자가가 아니어도 좋고 대기업이 아니어도 좋은 이 땅의 모든 '버티고 있는' 김 부장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이제 갓 OB가 된 그 분들에게도 '폭삭 속았수다'라고 존경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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