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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이었지만 유진에겐 행운 PMI 실패 부인 어렵지만 매각 기대차익 커

배장호 기자공개 2011-12-08 19:00:41

이 기사는 2011년 12월 08일 1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거액을 들여 인수한 회사를 다시 매물로 내놓기로 하는 결정이 대외적 명예와 위상을 중시하는 국내 재벌기업 문화에서 쉬울리 없다. 특히 그 결정이 당해 그룹 오너의 과오 내지는 실패를 자인하는 꼴로 비쳐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천정유 인수가 실패로 판명났음에도 불구, 내부에서 감히 매각 또는 부지 전용 등의 전략적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SK그룹 사례, 대우건설과 금호생명을 고집스럽게 부여잡고 있다 뒤늦게 매입원가 대비 헐값에 팔 수 밖에 없었던 금호아시아나 사례가 그런 류(類)다.

유진그룹은 하이마트를 인수한 지 4년만에 다시 M&A 시장 매물로 몇일 전 내놓는다고 대외에 밝혔다. 유진그룹이 조 단위의 외부자금까지 끌어들여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하이마트를 사들인 2007년 당시, 언론들은 보유자산 규모 순위 국내 몇번째의 새로운 대기업 집단이 탄생했다며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했었다.

유진이 하이마트를 팔고나면 "불과 4년만에 대그룹에서 중견그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식의 조롱(?)섞인 평론에 시달려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대외적 위상에 연연하지 않고 실리를 택한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의 이번 결정은 잘한 일로 평가 받을만하다.

무엇보다 하이마트가 유진그룹에겐 버거운 인수 대상이었던게 사실이다. 결과론적인 판단으로 유진그룹의 인수후 사후통합(PMI) 실패, 내지는 PMI 전략 부재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M&A 역사가 짧은 국내 기업 문화에서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기업을 인수해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는 것 자체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기존 대주주가 재무적 투자자로서 사업에 대한 전권을 경영진에 이양한 상태고, 실제 기업가치의 원천이 현 경영진의 맨파워에 있는 하이마트와 같은 기업을 PMI 하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

특히 평가받아야 할 부분은 유진이 하이마트가 한참 잘 나가고 있는 와중에 매각을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하이마트는 유진에 피인수된 2007년에 비해 2010년말 매출액 2배 이상, 영업이익 3배에 육박하는 고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된 주식시장 침체에도 불구 기업공개에 성공하는 저력도 보여줬다. 특히 최근 시장에서 성장성과 안정된 현금 창출력을 재평가받으며 하이마트 주가는 상당히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원래 물건을 제값 받고 팔려면 당연히 물건이 좋아야 하고 사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유진이 비록 하이마트에 대한 PMI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어찌됐건 하이마트는 유진으로의 피인수 후 4년동안 인상적인 가치 상승을 보여줬다. 실제 입찰에 들어가봐야 알 수 있긴 하지만, 예상되는 입찰 경쟁 구도도 그리 나빠보이지 않는다.

하이마트를 매각하는 유진그룹의 경제적 실익도 실은 적지 않다. 유진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할 당시 지불한 금액이 무려 1조9500억원에 이르지만, 실제 유진 계열사들이 부담한 자금은 2100억원에 불과했다. 1조9500억원 전체 인수대금 중 지분 투자조로 9000억원이 들어갔다. 이 중 유진그룹 계열사 부담액이 5100원이었고, 이 5100억원 중 3000억원은 우리은행으로부터 차입한 것이다.

유진그룹은 한때 우리은행 차입금 3000억원의 만기 상환을 위해 유진투자증권 경영권과 최대주주 지분을 매각하는 절차까지 진행했지만, 끝내 성사시키지 못하고 재무협약을 맺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어찌됐건 현재 유진그룹은 자기자금 2100억원으로 2조원짜리 대기업을 사서 현재 매각을 준비 중에 있으며, 못팔아도 4000억~5000억원, 잘팔면 7000억~8000억원까지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

하이마트 매각 지분가치(지분 100% 기준)를 2조원 정도로만 봐줘도 유진 계열사 보유지분 38.72%의 환산 가치는 8000억원에 육박한다. 인수 당시 자기투자금 2100억원을 제한 차익이 5000억원을 거뜬히 넘는다. 이 정도 금액이면 유진이 다른 뭔가를 시작하기에 결코 적지 않은 자금으로 보여진다.

결과만 가지고 논한다면 M&A의 성공과 실패를 쉽사리 속단하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만약 유진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이마트 인수 전 유진그룹의 주력 사업은 레미콘·시멘트·건설업 등 한 분야에 몰려 있었다. 인수 이듬해인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로 미국은 물론 국내 부동산업계도 기나긴 불황의 터널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과론적일 수 있지만 최근 몇년동안의 유진그룹은 하이마트 외에 거의 모든 사업이 어려웠고, 올해 하이마트 IPO 덕에 그나마 현금을 좀 만질 수 있게 됐다. 그런 와중에 하이마트 경영권 매각을 결정하면서 큰 차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STX그룹에서도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STX그룹은 최근 몇년간의 조선 해운업황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1조원을 넘게 투자해야 했던 아커야즈(현 STX유럽) 인수 딜 때문에 그룹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만약 STX가 아커야즈 인수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STX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조선 해운업에 편중돼 있었다. 지금의 아커야즈는 실은 STX그룹에겐 큰 복덩어리였다. STX는 아커야즈의 오프쇼어 부문(STX OSV)을 스핀오프해 싱가폴 증시에 상장시키며 일정 규모 현금을 확보했다. STX는 특히 OSV 경영권 매각을 추진 중에 있다. 비록 싱가포르 증시 침체로 OSV의 시장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OSV는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성과를 내는 등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다. 만약 OSV 매각 딜이 적정 가격에 성사된다면 STX는 지금의 위기를 너끈히 넘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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