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2년 02월 07일 10: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어느 정권이든 마무리 시기가 다가오면 힘이 빠지게 돼 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현 정부의 레임덕은 난타당하고 있는 자원외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던 까닭일까. 스캔들 수준의 폭로전이 한창이다. 모두 싸잡아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몫 보태고픈 마음은 없다. 몇몇 사례는 실로 구린 구석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자원외교 자체가 그릇된 좌표는 아니었다.
성과도 분명히 있다. 대표적인 게 한국석유공사의 사례다. 명색이 국영석유회사이면서도 세계 100위권에도 못 들던 공사가 비약적으로 규모를 키운 것이다. 지난 5년간 석유공사는 6개 대륙에 모두 거점을 확보했다. 과감한 인수합병(M&A) 전략을 짜고 이를 실행에 옮긴 덕분이다. 금융위기를 역으로 이용했다.
실적에는 모자람이 없다. 사비아페루(2009)와 캐나다 하베스트, 카자흐스탄 숨베(2010)에 이어 영국 다나(2010), 미국 아나다코(2011)까지. 제대로 판을 짰다. 세계 70위권에 안착한 석유공사는 덕분에 이제 메이저 대접을 받고 있다. 업계에 좋은 매물이 나오면 자문사들의 퍼스트 콜을 받는 신분이 됐다.
지난 이야기지만 외부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삼손 인베스트먼트(Samson Investment Co.) 건도 그런 맥락에 있다. 석유공사가 지난해 인수하려던 자원회사다. 석유공사는 미국 자원전문 자문사인 제프리스(Jefferies Group Inc.)의 퍼스트 콜을 받았다. 셰일 광구인 아나다코에 투자한 직후라 추가 제안을 받은 셈이었다.
삼손은 걸프 해안과 멕시코만 심해에 1만 여개의 유정을 가졌다. 툴사(Tulsa)를 설립한 슈스터만 패밀리(the Schusterman)가 소유했고 딜은 약 10조 원 규모였다. 훌륭한 매물이었다. 3조~4조 원 규모의 하베스트와 다나를 연이어 인수한 석유공사는 대담했다. 메가 딜을 넘어 수퍼 트랜젝션이라고 불릴만한 도전에 나섰다.
성공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다. 스코시아(Scotia)가 인수 자문사로 나섰고, 글로벌 사모펀드 블랙스톤(Blackstone Group)이 지원군을 자처했다. 별들의 전쟁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됐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연합군이 경쟁자였다. JP모간을 자문사로 일본 이토추 상사(Itochu Corp.)가 가세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였을까. 그런 중요한 시기에 국내에서 이라크 쿠르드유전 부실 논란이 터졌다. 이어진 언론들의 보도경쟁은 공사에 부실을 낙인했다. 국정감사가 진행됐고 사장이 불려 다니는 와중에 감사원 감사까지 시작됐다. 당시 석유공사에는 더 이상 수퍼 딜을 지탱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스스로 포기했다.
정말 안타까운 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손 건은 결과를 떠나 승부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던 사실이 두고두고 아쉽다. KKR·이토추는 석유공사가 포기하자 경쟁 없이 72억 달러(약 9조 원)에 승자가 됐다.
한 해가 지나 바야흐로 정권 말이 시작됐다. 이제는 국익을 떠나 자원외교를 둘러싼 논란이 정쟁으로 번져 있다. 비리는 캐야 한다. 하지만 일방적인 매도는 옳지 않다. 한국의 M&A 역사상 가장 큰 딜로 기록될 수 있던 삼손 건은 지금도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우리가 자중지란에 빠져있는 동안 또 어떤 기회가 사라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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