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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의 변신을 주목한다

신민규 기자공개 2012-05-18 10:00:04

이 기사는 2012년 05월 18일 10: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갑을 관계에서 관행은 을에게 절대수칙이다. 갑이 깨지 않는 이상 관행은 변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렇게 해왔고 무엇이 잘못 됐는지 중요치 않다. 연기금과 운용사는 철저한 갑을관계에 있다. 위탁 운용사로 선정되기 위한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관행은 숙명적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연초 해묵은 관행을 깨기 시작했다. 작년 감사원 지적을 받은 이후 내린 조치다. 뒤늦게 국민연금을 따라가는 부분도 있지만 몇몇 부분들은 앞서 나가는 측면도 있어 눈에 띈다. 주요 연기금들의 문제점이 불거져 나올 때면 일단 국민연금의 변화만 지켜보는 이쪽 생리와 사뭇 대조적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연초 '국내 주식 채권 운용사 선정 및 관리 지침'을 제정했다. 제정이란 말뜻대로 새로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예금사업단과 보험사업단 각자의 룰이 있었고, 사업단 내부에서도 주식형과 채권형의 방식이 상이했다. 감사원이 같은 조직 내에서 중구난방으로 위탁 운용사를 대할 필요가 있냐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큰 변화는 연도평가 제도 폐지다. 우정사업본부는 그동안 위탁사 분기평가와 연도평가를 병행했다. 벤치마크(BM) 지수를 초과해도 위탁사 풀에서 뒤처지면 가차없이 탈락되는 냉혹한 상대평가를 없앴다. 자금집행을 담당하는 우정사업본부 관계자 역시 '악랄하다'고 자인한 이 제도는 수년간 지속돼왔다.

이 제도가 위탁사간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고 단기실적을 강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잘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은 강력한 갑을관계를 방증한다.

물론 연도평가 폐지는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주요 연기금이 선제적으로 해온 조치라 신선하진 않다.

재미있는 점은 '갑' 서로 간의 관행도 일부 깬 부분이다. 주요 연기금 및 정부기관의 자금운용담당자가 가장 먼저 바라보는 조직은 국민연금이다. 무슨 문제가 생기든 국내 최대 큰손이 변하면 그제서야 뒤따라가는 식이었다. 우정사업본부 지침을 들여다보면 한발 앞서 변한 부분이 들어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번 지침에서 위탁사 선정시 정성평가 부분을 배제키로 했다. 수치화 가능한 정량평가로만 100% 뽑겠다고 밝혔다. 정성평가는 그동안 사적인 요소가 개입될 소지가 있어 공정성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성평가가 나쁘다고만 볼 수 없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의혹을 살 만한 요소를 제거하는 편이 낫다고 봤다.

운용사 역시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정성평가 결과로 떨어지느니 실력으로 검증받는 게 낫다는 시각이다. 특히 이런 긍정적인 반응은 영업력이 떨어지는 중소형사들 쪽에서 많았다.

국민연금 역시 작년 하반기 감사원 지적 이후 개선조치로 정량평가 비중을 늘리겠다는 발표를 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정성평가 비중을 정량평가와 같은 50%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기금운용담당자 위주였던 위탁사 선정위원회에 외부전문가를 과반수 이상 참여시키는 변화를 줬다.

국민연금이 먼저 변하지 않은 이유로 아직 주요 연기금의 정성평가 비중은 줄지 않고 있다.

지침에는 없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연기금들이 시도하지 않은 신규 자산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달 초 신규자산을 공모한다면서 "채권, 예금, 집합투자기구, 직접투자 등 모든 투자형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대동소이한 위탁 방식을 깨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아름다움은 거리에서 나온다. 겉보기에 예쁜 꽃도 현미경으로 수백배 확대하면 기하학적 표상으로 밖에 안 보인다. 적당한 거리감을 두지 못해 초점을 상실하면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연기금과 운용사는 그간 적당한 거리감을 찾지 못해 숱한 지적을 받아왔다. 갑의 위치에서 운용사를 불필요할 정도로 조여온 것이 사실이다. 우정사업본부의 몇가지 변화는 지나치게 밀착된 운용사와 거리감을 두고 본연의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주요 자금운용담당자들이 국민연금 눈치만 보지말고 운용사와 적당한 거리감 찾기에 나서길 기대해본다. 연기금 의사결정 행위는 운용자금의 크고 작음과 무관하다. 갑 스스로 낯뜨거운 관행을 깰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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