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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시장 지표의 역설

윤영환 크레딧애널리스트공개 2012-06-04 13:30:02

[편집자주]

신용평가는 자본시장의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단지 신용투자의 잣대에 그치지 않고, 산업/기업의 펀더멘털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늘 '광산 속 카나리아' 같은 존재입니다. 더벨을 통해 마치 지각 아래 거대한 멘틀 움직임을 꿰뚫어 보는 다양한 크레딧 전문가의 뛰어난 직관을 감상해 보십시요.

이 기사는 2012년 06월 04일 13: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빨간 신호등에는 서고, 파란 신호등에는 간다. 그게 상식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횡단보도 옆에 사람이 서있으면 신호에 상관없이 일단 정지해야 하지만, 일본의 어느 유명인은 "빨간 신호등, 모두 함께 건너면 두려울 것 없다"고 갈파했다. 신호등만 바라보고 운전하면 곧 난감한 일을 겪게 된다. 신용시장의 지표도 마찬가지다.

◇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금리

통상 중소기업의 금리는 대기업보다 높다. 그런데 간혹 중소기업의 신규대출금리가 대기업보다 낮아질 때가 있다. 언뜻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이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일은 꼭 시장의 리스크가 높아진 금융경색 상황에서 나타난다. 사실은 중소기업이 연쇄 도산하면서 당국이 긴급 금융지원에 나서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렇게 지표가 엉뚱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은행대출의 성격 때문이다. 리스크가 높아지면 자본시장은 바로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하지만 은행은 다르다. 바로 금리를 올리지 못하니 리스크가 큰 부문의 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결국 중소기업 대출은 아주 안전한 건만 진행하게 되면서 신규대출 금리가 낮아지는 것이다.

대출금리 동향을 분석할 때는 통상 신규취급기준을 활용하고 잔액기준은 잘 쓰지 않는다. 최근의 변화를 보다 잘 반영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대기업 대출금리의 상관관계는 잔액기준이 더 안정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이렇게 지표의 쓰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표는 선택과 해석을 통해서 의미가 부여된다. 지표에 매몰되기보다는 맥락을 살피는 여유와 통찰이 필요한 이유다.

중소기업 대출금리 - 대기업 대출금리

◇ 높은 성장률과 낮은 연체율

금융회사의 연체율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는 신용지표다. 연체율이 상승하면 바로 곳곳에서 화살이 쏟아지고, 연체율이 하락하면 주변의 눈길이 완연히 따뜻해진다.

그러나 연체율에는 큰 함정이 숨어있다. 대환 대출이나 한도 증액으로 연체율을 재설계하는 무모함이야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과 연체율의 관계는 너무 쉽게 간과된다.

높은 성장률은 당장의 연체율을 낮추지만 미래의 폭발적 연체율 상승을 예약하는 것이다. 연체율은 연체자산을 관리자산으로 나눈 것이다. 관리자산이 연체자산이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성장률을 높이면 당장의 연체율이 낮아진다.

한편, 고성장은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고 당연히 리스크가 커진다. 더욱이 성장률이 상승할 때 리스크의 확대는 그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되는 법이다. 성장률을 부쩍 끌어올리면 머지않아 필연적으로 연체율은 급등한다.

그래서 결국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연체율은 성장률이 높아지면서 계속 낮아지다가,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출 때 폭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요 캐피탈사 연체율과 성장률

높은 성장률과 낮은 연체율에 치어리더는 환호하고 카나리아는 두려움에 몸을 떤다. 탐욕과 공포는 시장의 태생적 양면성이다. 원론적으로는 시장이 성숙할수록 탐욕과 공포를 오가는 변동폭이 줄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리스크에 대한 이해는 진화하지만 정보투명성을 높여서 변동성을 제어하는 원론적 대응보다는 변동성 자체를 상품화하는 방식이 더 각광을 받는다. 과잉성장의 후유증조차도 성장 지향적, 시장 친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현대적 위기관리 방식이다. 다시금 치어리더는 환호하고, 카나리아는 새로운 리스크와 씨름한다.

◇ 신용스프레드의 역사적 저점

회사채시장의 펀더멘털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신용이슈의 안정(=부채비율 안정), 발행만기의 장기화, 순발행 기조 등을 꼽는다. 이들이 모두 좋을 때면 회사채시장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지만 회사채시장에 대한 질문은 대개 신용스프레드에 집중된다. 도대체 신용스프레드가 무엇이길래?

신용스프레드의 축소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채권시가평가 도입 이후 인상적인 신용스프레드 저점이 2번 있었다. 2003년 2월과 2006년 11월이다. 모두 회사채시장의 펀더멘털 개선에서 시작해서 장단기스프레드 축소와 함께 성장하다가 수급요인으로 저점을 찍는 대략 3단계의 흐름이었다.

사실 저점은 희망봉을 지나 고생문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저점에 대한 관심은 결국 남들보다 먼저 낙하산을 펴기 위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스프레드 축소는 끝나는 것일까?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장단기스프레드다. 신용스프레드와 상관관계가 매우 높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 장단기스프레드는 꼬리가 길다. 신용스프레드가 저점을 지나고도 장단기스프레드는 한참을 더 줄어든다. 이래서는 예고지표로 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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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시장 펀더멘털은 어떨까? 설명력은 높지만 참 무딘 지표다. 큰 흐름을 설명하기에는 좋지만 디테일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면 수급은 어떤가? 쉬운 듯 보여도 사실은 매우 까다로운 지표다. 펀더멘털이 대략 3개 요소로 집약되는 반면 수급 요소는 수없이 많다. 어떤 요소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사후적 설명은 가능하지만 사전적으로는 물론이고 당시에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엉뚱한 지표에 사로잡혀 흐름을 오판하기가 일쑤이다. 파생거래가 핵심인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는 것부터가 하늘의 별따기다. 수급의 중심이 회사채가 아니라 대개 금융채(은행, 카드, 캐피탈)라는 점도 상황파악을 더 어렵게 한다.

◇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지표의 불완전성에 실망하는 것은 너무 기대가 큰 탓이다. 어차피 불확실성과 씨름하는 것은 시장의 숙명이고 존재이유다. 절대지표가 없는 것은 차라리 행운이다. 부족한 정보와 지표들 때문에 치열한 정보탐색 노력이 보상받고 통찰력이 빛을 발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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