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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에 볼모잡힌 우리 노후

배장호 기자공개 2012-06-18 08:15:10

이 기사는 2012년 06월 18일 08: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년여 전 감사원에 기금감사국이란 조직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 조직은 기존 감사원 공무원들 외에 변호사, 회계사 등 외부 전문가들로 채워졌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 국은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들에 대한 감사 업무를 전담한다.

감사원이 연기금들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국가기관과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 검사와 직무 감찰을 통해 운영의 개선 향상을 도모토록 하는 헌법과 감사원법에 근거한다. 특히 직무 감찰은 공무원 등에 대한 비위 감찰 뿐 아니라 법령 제도 또는 행정 관리상 모순이나 문제점 개선을 위한 목적이 포함돼 있다.

방법은 원훈대로 '바른 감사'여야 한다. 바른 감사를 통해 '바른 나라'를 만드는 게 감사의 궁극 목표이자 감사원의 존재 이유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 생활의 최소한을 보장하는 자금이다. 공무원연금 역시 퇴직 공무원의 노후 대비에 쓰이게 될 소중한 돈이다. 교직원공제, 군인공제, 행정공제 등 여타 연기금도 가입자들의 미래와 직접 연관된다. 법에 의해 만들어진 이들 공적 연기금은 사실상 반강제로 징수된다.

감사원의 기금감사국 창설 운영은 일견 온당하다. 국민 노후를 위해 반강제로 걷어들인 돈이 엉뚱한 곳에 허비되거나, 사리 추구에 오용돼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서 연기금들에 대한 회계 검사와 직무 감찰은 준엄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국민은 연기금 운용의 수익을 돌려받아야 할 주인(Principal)이고, 감사원은 국민이 연기금 운용 수익을 돌려받을 때까지 잘 운용 관리되는지 국민을 대신해 감시하는 대리인(Agent)이다. 당연한 이치지만, 대리인은 주인의 뜻에 따라 위임받은 일을 수행해야한다. 연기금 운용자도 국민의 대리인이긴 마찬가지다.

연기금에 돈을 맡긴 국민의 뜻은 무엇인가. 기금 운용자에겐 기금이 안전하게 관리되도록 신의성실을 다하는 일일 것이다. 또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대다수 공적 기금들에게 있어 기금 고갈 문제가 머지 않은 미래의 현안이다 보니 더 높은 수익 창출을 통해 고갈 시기를 늦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임무다.

또 다른 대리인인 감사원은 이러한 기금 운용자의 임무가 사리와 절차에 맞게 운용 관리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이 임무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법은 갖가지 강제와 규율 권한을 감사원에 부여하고 있다.

제도가 원래 취지에 드러맞게 운영된다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하지만 최근 감사원의 연기금 감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해 불안하다.

국민연금 등 기금 운용자들은 진정한 위임자인 국민보다는 감사원의 눈치를 더 살핀다. 또 감사원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취지에 충실하기보다 권한을 탐닉하거나 행정 편의에 치중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최근 몇년간 각 연기금들이 투자 규모를 늘려오고 있는 사모투자펀드(PE) 위탁 투자만 놓고봐도 그렇다.

투자에 관한 한 비전문가인 감사원이 연기금의 펀드 운용사(GP) 선정 방식을 유독 문제 삼는다고 한다. GP의 재무사정과 같은 정량적 요소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강제하고, 연기금의 정성적 판단은 극도로 제한할 것을 주문한다는 후문. 또 개별 운용인력의 투자 이력보다는 운용사 자체의 이력에 치중토록 한다.

그런데 따져보자. 정량적 기준으로만 GP를 뽑는다면 굳이 기금운용조직을 둘 필요가 있을까? 정량적 기준만 들이대면 어떤 GP가 선정되는지 그냥 나올텐데 말이다. 또 투자 이력을 갖춘 개별 운용인력이 다 빠져나가도 운용사 자체의 투자 이력을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을까?

GP의 재무사정이 왜 중요한가? 금융회사 내 사업부 형태인 GP와 독립 GP가 있다 치자. 전자는 금융사 사업부인 탓에 부채비율이 높다. 반면 최소한의 자본금만으로 설립되는 독립GP는 부채비율이 높을리 없다. 그렇다고 펀드 사고 발생시 전자가 후자보다 손해배상 책임 능력이 못하다 단정할 수 있을까? 사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다반사다.

감사원의 이러한 감사 방향은 기금 운용 담당자의 자의적 판단 여지를 줄이고, 재량권 남용으로 인한 비위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일견 타당한 구석이 없진 않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지렛대 삼아 사욕을 추구하는 것을 묵과하는 것은 감사원의 중대한 직무 유기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기금운용조직은 보다 높은 기금수익률 달성에 치중하지 않는다. 단지 감사원으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을 만큼만 한다. 더 훌륭한 위탁 운용사(GP)를 찾기 위해 노력할 이유도 없다. 현재 GP 내 사정이 어떻든 과거 이력에 근거한 정량적 기준만 들이대면 된다.

혹여 사명감에 의욕을 부리다가는 GP를 검증하기 위해 밥 한끼 먹은 것 조차 소구당할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규에는 'GP와 골프를 쳐서는 안된다'고 규정돼 있다 한다. 형사상 뇌물죄 구성요건 중 하나인 직무 연관성이 여기에도 당연히 내포돼 있겠지만, 실제 규율을 받는 당사자들은 '무조건' 안되는 것으로 여긴다. '떳떳하니 괜찮다' 했다가는 사정당국에 불려갈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연기금들은 지난해 세계 1위 골프용품업체인 타이틀리스트 인수에 거금을 투자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인재가 떠난다는 거다. 300조원이 훨씬 넘는 천문학적 자금 규모를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자 자리. 시장 영향력도 크고, 자부심도 가질만한 자리지만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기금 내부 책임자들의 하소연이다. 국민 노후가 걸린 막중한 자금인데도 역량있는 인재를 구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국가가 나서서 문제를 찾아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이런 모든 상황 전개에 감사원의 감사가 모종의 영향을 끼쳤다면 감사원 스스로 숙고해야 할 일이다. 국민 노후를 위해 기금 운용자가 열정을 가지고 수익률을 0.1%라도 더 높이려는 노력에 의도치 않게 찬물을 끼얹은 적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내 노후가 정부에 볼모 잡힌다면, 누군들 이민을 생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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