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2년 06월 25일 11: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요예측을 도입하면 근절될 것이라던 회사채 수수료 녹이기가 재차 확산되고 있다. 사전 매출이나 금리확약을 전제로 한 태핑(수요조사)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입찰에서 미배정돼 증권사가 떠안는 미배정 물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수수료 녹이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아예 처음부터 수수료를 녹일 것을 작정하고 있는 '계획된 미배정'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 미매각 확대, 수수료 녹이기 당분간 지속 확대 전망
수요예측 도입 후 지금까지 수수료 녹이기로 팔린 일반회사채(SB)는 8개 종목이다. 5월말 현대백화점을 시작으로 6월 들어 대규모 미매각이 발생한 우량 대기업 채권 중심으로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현대백화점 21차 채권은 발행 다음날인 5월30일 표면금리(3.61%)보다 7bp 높은 3.68%에 일부가 거래됐다. 총 매매금액은 300억 원으로 100억 원과 200억 원, 두 건의 거래가 있었다. 미매각 물량 200억 원을 양분한 공동대표주관사 하나대투증권, 신한금융투자가 한쪽에 물량을 몰아준 후 투자자에게 전액 넘긴 것으로 파악된다.
만기 3년을 감안한 수수료 녹이기 수준은 21bp(7bpX3년)로 인수 대가로 받은 25bp의 대부분을 매매 손실로 토해냈다.
6월 들어서는 수수료 전체를 반납하거나 역마진 영업에 나설 만큼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F&I 12회차 채권은 발행 당일인 15일 1.5년물 200억 원 어치가 매매됐다. 거래금리는 3.66%로 발행수익률 3.54%보다 무려 12bp나 높았다. 만기를 감안한 손실 규모는 18bp로 인수 수수료 15bp보다 커 역마진이 발생했다. 우리F&I 12회차 채권은 발행액1800억 원 모두 미매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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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발행한 KT렌탈 31회차 채권도 표면수익률보다 높게 팔렸다. KT렌탈은 수요예측에서 1200억 원에 달하는 응찰물량을 금리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정에서 제외한 바 있다. 그 결과 총 2000억 원 예정액 중 1900억 원의 미매각이 발생했다.
KT렌탈 31-1회차는 발행 당일(6월15일) 200억 원 어치가 표면수익률(3.73%)보다 6bp 높은 3.79%에 팔렸다. 만기 3년을 대입하면 손실 규모는 18bp로 수수료 20bp 대부분을 깎아 먹었다.
32-2회차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같은날 매매규모는 1360억 원으로 미매각 물량 1000억 원 대부분이 팔린 것으로 보인다. 거래 최고 금리는 4.03%로 발행수익률 3.97%보다 6bp 높다. 5년 만기를 감안한 손실 규모는 30bp로 인수 수수료(30bp)와 같다. 최고금리로 팔아치운 인수단은 단 한푼의 이익도 남기지 못한 셈이다.
500억 원의 응찰에도 전량 미배정을 결정한 E1 회사채도 수수료 녹이기로 시장에 나왔다. E1 24회차 채권은 발행 당일인 20일 3.88%에 900억 원 어치가 팔렸다. 총 발행액 2000억 원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물량이 표면수익률 3.84%보다 4bp 높게 매매됐다. 만기 5년을 감안한 수수료 녹이기 규모는 20bp다. 인수단이 대가로 받은 금액(20bp)만큼 손실을 봤다.
한화케미칼 236회차 채권은 발행 다음날인 6월21일 표면금리(3.64%)보다 무려 9bp나 높은 3.73%에 200억 원 어치가 거래됐다. 만기 3년, 손실 규모는 27bp로 인수 수수료 27bp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DGB금융지주 채권도 발행 당일인 6월21일 1300억 원 어치(거래량 기준)가 3.80%에 거래됐다. 표면금리 3.75%보다 5bp 높았다. 만기 5년을 대입한 손실율은 25bp로 이 역시 인수 수수료(25bp)와 같은 수준이다.
BBB+급 비우량채에서도 사례가 나타났다. 신용등급 하락에도 A-급 금리를 제시해 전량 미매각이 났던 두산건설 채권이 발행당일 매물로 등장했다. 두산건설은 1년, 1.5년, 2년물 채권을 각각 7.20, 7.60, 8.00%에 발행했다. 6월21일 최고 매매가격은 71-1회차 7.47%, 71-2회차 7.85%, 71-3회차 8.22%를 나타냈다. 트렌치별로 22bp~27bp나 높았다.
6월22일에는 LS엠트론 7-2회차 채권이 표면수익률 3.78%보다 5bp 높은 3.83%에 팔렸다. 만기 4년을 감안한 손실률은 20bp로 인수 수수료와 일치했다.
◇ IB 협상력 부재, 선진화 방안 무색
최근 수수료 녹이기는 IB의 최대 골치거리로 부상한 미매각 물량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기록적 수준에 이른 크레딧 스프레드 축소, 발행사의 조달비용절감 의도, 출혈을 감수한 IB의 실적 경쟁이 맞물린 결과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대표주관사가 북-빌딩 과정에서 제대로 된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발행사 주도의 금리결정 구도를 개선하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기업은 투자수요와 상관없이 최대한 낮은 조달비용을 고집하고 있다. 결국 인수단이 미매각 물량을 떠안은 후 금리를 얹어 파는 수수료 녹이기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관행은 회사채 선진화 방안의 근본 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매각 물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수요예측 자체에 의미가 없는 금리를 고집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 의지, 시장참가자 공통의 문제인식이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는 한 수수료 녹이기 관행은 앞으로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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