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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차별'에 관한 단상

김현동 차장(금융팀장)공개 2012-09-05 08:59:59

이 기사는 2012년 09월 05일 08: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2003년 12월 금융감독원은 자동차보험 요율제도 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보험가입자별로 손해율에 상응하는 적정한 보험료가 부가되어야 함에도, 지역별 손해율 차이가 보험료에 반영되지 않아 이를 개선하려는 취지였다.

손해율이 높은 지역은 보험료를 할증하고, 낮은 지역은 보험료를 할인해주자는 것이다. 손해율이 높은 일부 지역의 교수들이 반발하고, 해당 지역의 시장이 상경투쟁을 벌이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커 결국 개혁은 실패했다.

# 2012년 7월 감사원은 금감원이 승인한 신한은행의 개인 신용위험평가모형(CSS)에 대해, 학력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모형을 재개발토록 조치했다. 돈을 빌린 사람의 신용위험을 평가하는데 학력이라는 차별적 요소를 넣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였다.

학력 차이가 직업이나 급여에 영향을 미치는데, 학력을 별도로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평가모형에는 학력 외에 12개의 별도 평가항목이 있고, 학력과 신용위험 간의 통계적 유의성도 검증됐지만 무시됐다. 신용위험 평가에서 학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불과했다.

# 자동차보험에 가입해본 사람이라면, 보험 가입 시 연령과 사고 경험 등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것이다. 보험 가입자의 사고통계를 기초로, 사고율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간에 보험료를 차별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차별을 '공정성(Equity, Not unfairly Discriminatory)의 원칙'이라고 한다. 보험계약자가 가지고 있는 위험의 크기에 따라서 보험료를 차별적으로 적용해야만, 전체 보험가입자 간의 형평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성의 원칙에 근거해 미국, 유럽 등에서는 지역별 차등보험료를 적용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도입이 늦춰지고 있다. 반면, 미국 등에서는 인종에 따른 손해율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험료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인종에 대한 차별금지가 법적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와 유사하게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에도 빌리는 사람에 따라 금리가 차등 적용된다. 거래실적, 연체 유무 등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도를 기초로 금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은 은행이 갖고 있는 공적 성격에 기초하고 있다. 은행은 은행에 돈을 맡긴 예금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예금자를 보호하려면, 대출금을 떼이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은행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척도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규제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신한은행이 금감원에 승인을 요청한 개인 신용평가모형은 BIS 비율('바젤Ⅱ 내부등급법')을 산출할 때 사용하는 신용리스크 측정 방식이다. 신한은행이 갖고 있는 5년 이상의 거래통계를 기초로, 개인 차주의 신용등급을 어떻게 매길 것인가를 모형화한 것이다. '예금자 보호'를 위해 우량 차주와 불량 차주를 구분해내는 정교한 모형을 만들었고, 금융당국에 모형 승인을 요청했다. 학력을 기초로 우량 차주와 불량 차주를 구분해낼 수 있는 유의미한 통계자료를 검증한 곳은 신한은행이 유일했다.

미국 연방정부 산하 신용정보회사인 Navy Federal Credit Union은 개인의 신용을 평가할 때 학력수준을 고려하고 있다고 홈페이지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국 이외 영국이나 호주 등 금융거래와 관련해 차별금지 항목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나라에서도 학력을 차별금지 항목으로 규정한 나라는 없다.

자동차보험에서는 특정 연령대나 성별 등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진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남자라는 이유로 높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는 있겠지만, 전체 보험가입자 입장에서 보면 공정한 차별이다. 물론 학력을 이유로 보험료를 차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력을 차별하지 않는 것은 연령이나 성별과 달리 '사후적으로 통제불가능한' 요인이 아니고, 조작 가능성 때문에 통계 데이터의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학력을 차별금지 항목에 넣느냐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학력을 차별금지 항목에 넣는다면, '학력은 (신분처럼) 사후적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금융거래에서 리스크에 따른 차별마저 반대한다면, 금융이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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