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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들 좀 분하지 않겠어요?

강종구 기자공개 2013-08-12 21:33:39

이 기사는 2013년 08월 12일 07: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신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회사채 차환지원제도는 산으로 가고 있다. 멀쩡한 사람을 수술대에 올려 놓은 것처럼 생뚱맞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내놓은 짜집기 대책이니 또 당연한 일이다. 그 뿐인가 제도의 시행을 위해 동원된 이해관계자들이 윈-윈(win-win)하는 구조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어느 한편에만 좋은 일이니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비정상인 회사채 시장(정부가 이 대책을 '회사채시장 정상화 방안'이라고 했음을 상기하자)을 정상화시켜주겠다고, 정부가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었다. 자본시장에 종사하는 증권업계, 자산운용업계 그리고 이들을 대표하는 금융투자협회가 가장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웬걸, 금융투자협회는 다소 난감한 표정이고, 업계의 대표로 참여한 5개 대형 증권사들은 입이 십리는 나와 있다. 자신들은 들러리 신세라고 투덜투덜, 종종 증권업계 만의 회합이라도 열리면 볼멘 소리 뿐이다. '왜 산업은행은 아무런 위험도 지지 않고 그 많은 물량을 다 가져가나' '증권업계는 전체의 10%가 고작인 메짜닌 채권만 먹고 떨어지란 말이냐' 등등….

그들의 불만은 다분히 사적이지만 충분히 공감할 만 하다. 금융투자협회가 끝까지 반대하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민간 시장 내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었는가'라고 반문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분명히 위기에 빠진 회사채 시장을 살리겠다는 대책이었지만 이 대책의 주체는 회사채 시장의 핵심 참여자인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아니다. 회사채 시장의 생태계인 발행제도나 유통제도 또는 신용평가도 이 대책과는 깊은 관계가 없다.

금융감독당국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뚝딱' 만들어 낸 구조의 핵심에는 민영화가 물건너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차환지원을 신청할 기업의 주거래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이 있다. 또 하나의 공적금융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이 동원되고, 정책금융공사와 한국은행이 지원사격을 하는 구조. 여기 어디에 시장 자율의 요소가 있단 말인가.

차환의 대상인 만기도래 회사채는 증권사의 주선을 통해 공모로 발행된 것이었지만 정부의 은혜를 입어 새로 발행될 회사채는 일괄적으로 산업은행이 인수하게 되고, 주로 채권은행과 신용보증기금의 프라이머리 CBO로 넘어간다. 회사채 시장의 주역인 증권사는 주관과 인수의 기회를 잃었다. 산업은행을 보조할 뿐이다. 고작 10%일 뿐인 메짜닌펀드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포함시켰다는 명분을 얻고자 하는 건 너무 속보이지 않는가.

자금을 지원받는 형태는 회사채이지만 실은 대출이나 다름없다. 차환지원 승인을 얻은 기업은 채권은행과 '특별한 여신거래 약정'을 맺는다. 채권은행이 대출의 형태로 회사채를 인수하는 것이니, 2000년대 중반 공모 회사채 시장을 심각하게 구축했던 '은행 인수 사모사채'와 본질이 다르지 않다. 증권사도 차환발행심사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들러리라고 하지 않는가. 마음 같아서야 공모채 시장이 들고 일어나 금융감독원에 내는 발행분담금 거부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겠지만 당국이 하는 일에 어딜 감히…

처음엔 건설 해운 등 일부 업종을 위해 고안한 차환지원제도였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업종 모든 신용등급의 기업에 문이 열려 있다. 외국에서 WTO에 제소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애시당초 특정한 업종이나 기업만을 지원하는 식은 불가능했다. 현실성을 떠나 회사채 시장의 모든 기업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그래봐야 4조 원 밖에 되지 않는 규모이고 한시적인 대책일 뿐인데,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애시당초 회사채시장 인프라 개선이니, 회사채 시장 정상화방안이니 포장하지 않고 부실기업 자금지원 방안이라든지, 위기기업 긴급 대출제도라고 했으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시장의 메카니즘이나 규율을 무시하고, 시장을 바보로 만들면서 국책은행에 몰아주기를 하는 것이라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혹자는 중요한 건 기업의 자금조달인데, 밥그릇 싸움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이것은 밥그릇 싸움이다. 어쩌면 자본시장과 금융당국을 등에 업은 제1금융권 간에 예상외로 심각한 밥그릇 싸움이 될 지도 모른다. 어디 밥그릇 싸움처럼 진지하고 치열하고 진정성이 있는 싸움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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