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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강종구의 Question]

강종구 기자공개 2013-10-08 12:56:17

이 기사는 2013년 10월 07일 16: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착각을 하신 것 같아요" 그와의 통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증권사들이 사용하는 급전(急錢)인 하루짜리 콜머니가 자본총계의 25%를 넘어가는 곳이 수두룩하다는 기사를 두고 한 말이다. 수화기를 통해 넘어오는 뉘앙스는 '뭘 좀 제대로 알고 써야할 것 아니냐'는 투였다.

모 증권사 홍보임원으로 자금부문까지 함께 맡고 있다는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더벨에서 월말 잔액을 기준으로 증권사들의 콜머니 현황을 조사했는데, 금융당국이 규제하는 콜머니 한도는 '월평균 잔액'을 기준으로 한다. 월말을 기준으로는 자기자본의 25%가 넘을 지 몰라도 월평균 잔액으로는 어느 증권사도 한도를 넘지 않는다. 월말에는 일시적인 이유로 한도를 넘어갈 수 있지만 그건 금융감독원에서 문제 삼지 않는다.

그의 설명은 틀린 게 없다. 월평균 잔액을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은행이든 증권사든 금융회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금융감독원이고, 그 금융감독원이 기준을 딱 정해서 제시했는데, 무슨 경을 치겠다고 그걸 어기겠는가.

증권사 콜머니 규제 논의가 처음 제기된 2008년, 그 단초를 제공한 사건을 처음 보도한 것이 더벨이었다. 하마터면 대형사를 포함해, 국내 증권사 대여섯 곳이 콜머니를 결제하지 못해 집단으로 돌연사할 뻔한 그 날의 섬뜩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일이 현실이 됐다면 아마도 국내 금융시장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 됐을 것이다.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콜머니를 규제한 이유는 단지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에서 찾아올 유동성 경색을 우려해서 만은 아니었다. 은행 지준 시장인 콜 시장을 정비하는 한편 금융기관 간 환매조건부채권(RP) 시장을 육성해 단기금융시장의 생태계를 바로잡자는 취지도 함께 있었다.

증권사 콜머니 규제가 만들어지고 2년여가 지났다. 한국은행에서도 금융감독원에서도 당시 제도를 만들었던 실무자들은 지금 그 자리에 없다. 내년 콜머니 전면 금지 시행을 앞두고 최근 후임자들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지만 당시의 취지와 금융위기 당시의 긴박함을 얼마나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다.

위기는 잊혀지고 취지는 퇴색된 모양이다. 증권업계는 콜머니 사용이 전면 중단될 경우에 대비한 자금조달구조의 마스터플랜을 짜기 보다는 규제 완화를 위해 금융당국을 설득하고 있다. 들리는 얘기로는 당국에서도 증권업계의 딱한 사정을 어여삐 여겨 콜머니 규제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증권사들은 손쉽고 저렴한 콜머니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갑갑함만이 남았나 보다. 자신들의 직장이 한순간에 사라질 뻔한 아찔함은 기억 저편으로 보내 버린 듯 하다.

금융당국도 마찬가지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게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위해 어떻게 인프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금융산업과 금융시장의 파수꾼으로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 지 아는 지 모르는 지 의문이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2008년 당시에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풀어 증권사를 사지(死地)에서 구해주지 않았어도 지금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지 않은가. 한국은행이야 증권업계의 공멸을 막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겠지만, 지준을 내지 않는증권사를 구하는 건 한국은행 본연의 역할이 아니었다.

월평균 잔액으로 한도를 정한 건 규제의 허점이었다. 위기가 평균적으로 나눠서 오는 것이 아니니 평균을 아무리 막는다고 위기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로 증권사들은 평균적으로는 규제를 맞추면서 필요할 때는 마음 놓고 콜머니를 써 왔다.

설명을 다 들은 임원의 대답이 걸작이다. "증권사들을 무척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위기는 언젠가 또 온다. 옛날에는 10년 마다 한 번씩 온다던 위기가 요즘은 4~5년에 한 번씩은 온다. 앞으로 30년 동안 적어도 6~7 차례의 위기를 겪어야 한다는 얘긴데… 저 증권사 오너, 자식에게 물려주기는 글렀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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