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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주식' 말고는 팔 것이 없나 [강종구의 Question]

강종구 부장(AM팀장)공개 2014-01-17 13:54:34

이 기사는 2014년 01월 15일 18: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여름에 긴 장마를 만나거나 가을 가뭄이 길면 김장철 배춧값은 어김없이 폭등한다. 식당 주인의 인심은 야박해져 단골손님이 아니라면 김치 대신 깍두기나 단무지를 내놓는다. 배추가 아닌 금(金)추가 되고 김치가 아닌 금(金)치가 된다. 농산물의 복잡한 유통 단계를 탓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집집마다 담그는 김치의 양이 크게 줄지는 않는데 배추의 공급은 급감하니 당연한 이치다.

배춧값이 오르면 이듬해 봄·가을에는 재배 농가가 크게 는다. 하늘이 도와 날씨도 적당히 좋아서 배추 속이 꽉 찬 것이 제법 알차다. 질도 좋아지고 생산량도 크게 늘어 그야말로 풍년이지만 이번에는 가격이 폭락해 농민들의 속을 태운다. 수확도 하지 않은 배추밭을 통째로 갈아 엎는 장면이 뉴스에 비쳐지고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바로 지난해 풍경이다.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거미집이론(cobweb theorem)을 들먹이지 않아도 매년 널 뛰듯 하는 농산물 가격의 변동성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수요는 크게 변하지 않는데 공급이 갑자기 늘면 가격이 내리는 법이고, 공급이 크게 줄면 가격은 오르는 법이다. 농민의 입장에서는, 올해 배춧값이 좋다고 재배를 늘렸다가는 내년에 낭패를 당할 수 있고, 값이 떨어졌다고 밭 채로 갈아엎었다가는 땅을 치고 후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 되겠다.

거미집이론이 배추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이 금융시장이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아니면 부동산이든 언제나 어느 한 쪽에서는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그 쏠림은 투자자에게는 실패를, 시장에는 위기를 부른다. 개인투자자도 익숙한 주식시장만 보더라도 그렇다. 물린 투자자의 절반 이상은 늘 꼭지에 잡혔고, 털고 나온 사람들은 머지않아 그 때가 바닥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금융시장은 (투자자의) 피를 먹고 성장한다고 하는 지도 모른다.

꼭지에 사고 바닥에 파는 '실패'를 전적으로 투자자의 몫으로 돌려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금융상품을 파는 게 업(業)인 은행이나 증권사가 쏠림을 주도하거나 조장하는 일은 늘 벌어져 왔다. 유행에 민감한 의류회사가 새 봄에 잘 팔릴 아이템을 골라 매장 전체에 깔아 놓는 것처럼, 금융회사도 투자자에게 팔기 쉬운 상품을 진열해 놓기 마련이고, 그렇게 해야만 그 해의 매출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경영자들은 믿는다.

철마다 옷이 바뀌듯 금융회사들이 내놓는 상품도 계절을 타게 마련이다. 겨울에 여름 옷을 팔지 않는 것처럼, 주가가 오를 때는 주식형 펀드를 추천하고, 금리가 내릴 때는 채권을 사라 한다. 증권사들은 2012년 채권형 상품을 고객들에게 추천했고 지난해에는 '요즘 유행하는' 롱숏펀드를 주로 팔았다. 지난해 3분기 주가가 하락하자 주식형 펀드를 추천대상에서 제외하더니 4분기 다시 진열대의 맨 앞자리에 내놓았다.

올해 증권사들이 부자고객에게 팔겠다고 내놓은 상품들의 키워드는 '선진국'과 '주식형'이다. 삼성증권을 거래하는 고객이 담당 프라이빗뱅커(PB)에게 상담을 받으면 그는 미국과 유럽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랩, 상장지수펀드(ETF), 주가연계증권(ELS) 등으로 채워진 카탈로그를 건넬 것이다. 해외 주식형 상품의 판매를 6000억 원에서 2조 원으로 늘린다고 하니 국내 금융상품들은 진열장의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투자증권은 일선의 PB들에게 선진국 주식형 펀드의 판매를 독려하고 있고, 대우증권 역시 피델리티나 슈로더와 같은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의 미국 또는 유로지역 주식형 펀드를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해를 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난해 주식시장이 가장 좋았던 곳이 미국이고, 세계 경제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주도로 회복된다고 한다. 미국 중앙은행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풀었던 달러를 도로 회수한다고 하니 채권가격은 내릴 것이고, 달러화는 강세를 띨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선진국 주식을 팔지 않으면 무얼 팔겠는가. 국내 주식형 펀드를 권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고 채권을 사라고 했다가는 뺨을 맞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오른다고 믿고 있을 때 위기는 가까이 온 것이고, 모두가 바닥이라고 생각할 때가 사야 할 시점이라는 것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안다. 모든 금융회사가 같은 상품을 추천하는 그 때는 '폭탄돌리기'의 마지막 순간이 되고 만다. 금융의 역사는 그런 과정을 반복한 배반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최소한 웰스 매니지먼트를 표방하는 금융회사라면, 철마다 옷을 갈아 입듯 시류에 따라 상품을 갈아타기를 권하는 관행을 좋게 보기 어렵다. 당장 고객을 설득하기 좋고, 수익을 올리기 편할 수는 있지만 고객의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안정적으로 불려 줄 것이라고 믿어주기 어렵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의 말이다. "선진국 주식은 이미 많이 올랐다. 경제가 좋아진다고 주가가 늘 오르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경기상승이 얼마나 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너도나도 선진국 주식을 팔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위기는 이미 잉태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관점을 바꿨다. S&P500 지수는 이미 고평가되어 있고 올해 최소한 10% 이상 떨어질 가능성이 67%라고 내다봤다. 지금의 주가 수준은 과거 2000년대 초반 기술주 거품기와 비슷한 수준을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설마 또 꼭지에 물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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