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의 일동제약 지분 매입단가 '1만2500원'의 의미 주총 승리 위해 인수가 조율한 듯… 자기자본 5% 미만 거래시 공시의무 없어
정호창 기자공개 2014-02-03 09:45:03
이 기사는 2014년 01월 29일 11: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녹십자 그룹이 최근 개인투자자로부터 일동제약 지분을 추가 취득하는 과정에서 세밀한 인수 전략을 펼친 것으로 추정된다. 공시 의무가 없는 수준으로 지분 인수가격을 산정해 일동제약의 방어 시간을 일주일 정도 줄이는 효과를 얻었다는 분석이다.29일 금융감독원 및 증권업계에 따르면 녹십자 그룹은 지난 10일 일동제약 4대주주인 이호찬 씨외 4인의 보유 지분(13.02%) 전량을 407억 여원에 인수했다. 주당 인수가는 1만 2500원이며 녹십자가 380억 원, 녹십자홀딩스가 27억 원어치의 주식을 각각 인수했다.
이호찬 씨의 주당 매각가는 거래 당일 일동제약 종가 1만 950원보다 14.1% 높은 가격이다. 하지만 이는 이호찬 씨가 한때 손잡았던 일동제약의 다른 개인주주 안희태 씨의 지분 매각가에 비해서는 9%가량 낮은 가격이다.
일동제약의 5대주주였던 안희태 씨와 특수관계인은 지난해 5월 말 일동제약 지분 6.98%(175만 주)를 240억 원을 받고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의 개인회사인 씨엠제이씨에 매각했다. 당시 주당 매각가는 1만 3700원이다.
이 때문에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녹십자와 이호찬 씨가 공시한 일동제약 지분 거래가격이 실제 거래가격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동제약과 녹십자가 지분 확보 경쟁을 펼치는 상황에서 불과 7개월 전 1만 3700원에 거래된 주식을 1만 2500원에 매각하는 것은 상식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에서는 만약 녹십자가 1만 2500원 이상의 가격을 거부했다고 해도 이호찬 씨가 일동제약 오너가에 거래를 요청했으면 쉽게 주당 1만 3700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권 안정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사활을 건 일동제약 오너 일가가 지분을 13%나 늘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호찬 씨와 특수관계인이 정말 주당 1만 2500원에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면 안희태 씨의 거래 가격에 비해 39억 원 이상 손해를 보게 된다. 이호찬 씨와 녹십자의 거래 가격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게다가 이호찬 씨는 녹십자와의 지분 거래로 인해 39억 원 외에 추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이호찬 씨 일가는 연합유리라는 의약용기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주요 거래처 중 한 곳이 일동제약이다. 따라서 이호찬 씨 일가가 녹십자와 지분 거래를 완료한 후 일동제약이 연합유리와의 거래 관계를 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녹십자가 이호찬 씨와 특수관계인들에게 대외적으로 공표된 지분 인수금액 외에 추가적인 반대급부나 혜택을 약속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녹십자가 일동제약 지분의 주당 인수가를 1만 2500원으로 정하고 이호찬 씨 측 지분 전량이 아닌 380억 원어치의 주식을 인수한 것은 공시 의무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국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에 따르면 상장법인은 자기자본의 5%가 넘는 규모의 타법인주식에 대한 인수 결정을 내릴 경우 즉시 공시하도록 돼 있다. 이 규정의 자기자본은 최근 사업연도말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자산총액 - 부채총액 ± 최근 사업연도말 경과 후 신고·공시사유 발생일까지의 자본금 및 자본잉여금의 증감액'이란 산식에 따라 정해진다.
이 산식에 따라 녹십자의 자기자본을 구한 후 5% 금액을 계산하면 390억 원 정도다. 녹십자가 이번에 손에 넣은 일동제약 지분 인수가격을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주당 인수가격이 1만 2500원보다 조금만 높았다면 기준 금액을 넘길 뻔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녹십자는 일동제약 지분 인수와 관련된 즉시 공시의무를 피했다. 대신 상장법인 지분 5% 이상을 확보한 경우 1% 이상 지분 변동이 발생하면 5거래일 안에 보고해야 하는 '5%룰'에 따라 지난 1월 16일 일동제약 지분 추가 취득 사실을 공시했다.
녹십자의 이런 치밀한 전략은 일동제약 경영진의 눈을 6일가량 가리는 효과를 발휘했다. 주총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6일은 매우 긴 시간이다. 일동제약은 임시주총을 겨우 일주일 앞두고서야 녹십자의 지분 추가 취득을 알게 됐다. 주총 표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의결권을 추가로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한 시점이었다.
결국 지난 24일 열린 일동제약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사 분할 안건은 녹십자의 의도대로 부결됐고, 일동제약 경영진이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한 지주사 체제 전환은 수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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