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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두번째 부활은 가능할까 [강종구의 Question]

강종구 기자공개 2014-05-13 10:01:00

이 기사는 2014년 05월 09일 16: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4년 8월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은 '주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채권금융기관과 맺은 경영정상화 약정에서 조기졸업했음을 알렸다. 2002년 불거진 유동성 위기에서 시작된 2년 여에 걸친 혹독한 구조조정이 공식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현대상선의 재무제표는 처참했다. 부채비율은 1394%에 달하고 3조 원대의 차입금에서 발생하는 금융비용이 연간 5000억 원에 달했다. 매년 3000억 원 이상의 적자로 부분자본잠식 상태인 회사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벌어서 갚을 수 없으면 팔아서 갚아야 하는 법. 적선동과 무교동에 있던 사옥을 매각하고 터미널을 팔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수익성이 좋은 알짜 중의 알짜 자동차운송사업부를 눈물을 머금고 유코카캐리어스에 넘겨야 했다. 당시 사실상 유일하게 수익을 내던 자동차운송사업부를 파는 것은 당장의 먹거리가 사라지는 것일 뿐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파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외부에서조차 현대상선이 이제는 무얼 먹고 사나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쩌랴, 버리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것이 유동성 위기의 덫에 걸린 기업의 숙명인 것을. 팔 수 있는 자산을 팔아 차입금을 갚고 현금을 확보하고 재기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알토란 같은 자산들을 팔고 세 차례에 걸친 인력 구조조정 등의 아픔을 겪고 난 후 현대상선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회사의 외형은 크게 위축됐지만 대신 탄탄해졌다. 불과 2년 만에 부채비율은 300%대로 떨어졌고, 차입금은 3분의 1로 줄었다. 금융권의 자금지원이 재개되고 시장에서 조달이 가능해지면서 때 마침 살아난 해운시황에 올라탈 수 있었다. 2003년에는 2900억 원, 2004년에는 사상 최대인 55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다시 유동성위기에 몰린 현대상선의 상황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2002년과 닮아 있다. 아니 오히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지난해말 부채비율은 1396%에 달하고 차입금은 다시 6조 원대로 늘었다. 2011년 이후 무려 12분기 동안 적자행진을 하면서 잉여금을 모두 까먹고 부분 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벌어들이는 돈이 없으니 연간 4000억 원 이상인 이자와 꼭 필요한 투자는 자산을 팔아 충당하고 있다.

결국 노 전 사장이 주주들에게 위기의 종결을 알리는 편지를 쓴 지 10년 만에 현대상선은 다시 채권단의 통제 아래 자구계획을 이행 중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때처럼 절박하게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현대상선이 지난달 말 LNG전용선부문을 5000억 원에 IMM컨소시엄(IMM파트너스, IMM인베스트먼트)에 매각했다. 정확히는 IMM컨소시엄에서 설립한 특수목적회사가 4000억 원을 대고 현대상선 자신이 1000억 원을 출자해 신설한 '현대엘엔지'에 LNG전용선사업을 넘겼다.

이 거래 하나로 현대상선은 부채비율(개별 재무제표 기준)을 600%포인트나 낮출 수 있게 됐다. 회사는 자구계획의 60%를 달성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돌렸다. 정부 당국과 채권단은 현대그룹의 위기가 끝났고, 이제 한숨을 돌렸으니 또 다른 매각대상 자산인 현대증권은 천천히 팔아도 된다며 박수를 쳤다.

정말 현대그룹의 위기는 끝난 걸까. 아무래도 찜찜하다. 아무래도 부채비율의 마술에 걸린 것 같다.

부채비율이 1000%이고 자기자본이 5000억 원인 A사가 있다고 치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1조 원의 빚을 갚았다. 부채비율은 800%로 떨어진다. 이번에는 A사가 부채를 5000억 원 줄이고, 자본을 5000억 원 늘렸다고 해 보자. 자기자본이 두배가 되면서 부채비율은 450%로 크게 하락한다. 실제 재무개선의 정도는 다르지 않은데, 부채비율로 나타나는 효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부채를 분자로, 자본을 분모로 하는 부채비율의 속성이 그렇다. 부채를 줄이는 것보다 같은 크기의 자본을 보태는 것이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는 직방(直放)이다. 일종의 착시효과라고 해도 좋고, 숫자놀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부채비율의 변화 폭이 구조조정의 성과를 대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현대상선이 IMM컨소시엄과 계약한 금액은 부채를 포함해 1조 300억원이다. 사업부의 총자산은 6000억 원이고 선박금융 차입금 5000억 원이 있다. 매각차익은 43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만약 장부가대로 팔았다면 부채비율은 100%포인트가량 떨어지는 데 그쳤을 것이다. 4300억 원의 매각차익이 생기는 바람에 그 폭이 600%포인트까지 커진 것이다.

6000억 원짜리 자산에서 어떻게 4300억 원이나 매각차익이 생기는지 알 수 없다. 불친절하게도 회사는 이 부분에 대해 공시를 하지도 따로 설명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LNG사업부에서 창출하는 연간 영업이익은 1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아무리 현재가치를 높게 쳐줘도 이것으로는 4300억 원을 맞추기 어려워 보인다.

현대엘엔지는 보통주 1000억 원과 우선주 4000억 원을 발행한 돈으로 자산을 양수할 예정이다. 보통주 1000억 원은 현대상선의 몫이고, 우선주 4000억 원은 사모투자펀드(PE)인 IMM컨소시엄의 몫이다. 옵션이야 걸기 나름이지만 우선주에는 의결권이 없는 게 보통이다. 설사 의결권이 있는 우선주라고 해도 진정한 경영권을 갖는다고 믿기는 어렵다. 대개의 PE가 하는 우선주 투자는 일정 기간 고정적인 이자나 배당을 보장받고 특정 시점에 회수하는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현대엘엔지가 사실상 현대상선의 종속회사라면, 다시 말해 동일한 연결주체라면 5000억 원의 차입금 감소도, 4300억 원의 매각이익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단지 현대상선의 개별 부채비율이 하락했을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 유일하게 의미를 갖는 건 IMM컨소시엄이 제공한 4000억 원을 현금유동성으로 확보했다는 점이다. 언젠가 돌려줘야 할 4000억 원이라면 자본보다는 차입금의 성격이 짙을 수 있다.

시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현대상선의 주가는 지난 2일 이후 3일 연속 하락했다. 자산매각을 발표하기 전 1만 원선을 간신히 지키던 주가는 9500원대로 떨어졌다. 부채비율이 무려 600%포인트나 떨어졌으면 한 마디쯤 할 만도 하건만, 신용평가사들은 아무런 축하의 인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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