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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무리한 공사 발주가 '화' 불렀다 [담합 그리고 건설사의 눈물]①경기부양 목적 대형공사 쏟아내...업계 "담합 아닌 '협조' 차원 입찰"

길진홍 기자공개 2014-08-04 10:19:38

[편집자주]

건설업계가 공공공사 입찰 담합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4대강 턴키 공사를 비롯한 대형 국책공사에 참여한 건설사들이 잇따라 과징금 폭탄을 맞으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계 고질적인 병폐인 담합 배경과 입찰제도 현황 및 문제점 등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4년 07월 30일 14: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16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세종시 심판정. 호남고속철도 최저가낙찰제 공사 담합 의혹을 받고 있는 28개 건설사와 대형 법무법인, 공정거래위원회 위원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건설사들은 침통한 표정이 역력했다. 곳곳에서 선처를 호소하는 변호인들의 발언이 잇따랐다. 그러나 엄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위원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감정에 호소해 담합이라는 원죄를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건설업계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되는 순간이었다.

◇담합 제재 2009년 정부 발주공사 집중...물량 쏟아져 '분할 입찰'

건설업계가 입찰 담합 제재 공포에 떨고 있다. 4대강 공사를 비롯해 대형 국책공사 담합이 줄줄이 터지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과징금에 검찰 고발, 발주처 손해배상소송, 국세청의 세무조사까지 건설사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국민신뢰는 또 바닥에 떨어졌다. 급기야 주요 대형건설사 사장들이 직접 나서 고개를 숙였다. 건설사 수장들이 이처럼 직접 읍소를 하고 나선 배경에는 드러내놓고 말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최근 공정위의 담합 제재를 받은 초대형 공사는 대부분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발주가 이뤄졌다. 4대강 1차 턴키 공사(과징금 1115억 원), 인천도시철도 2호선(1322억 원), 경인운하(991억 원), 호남고속철도(4355억 원) 등의 대형공사가 모두 2009년 발주가 이뤄졌다.

건설사들의 담합이 2009년 발주 공사에 몰린 이유는 당시 정부가 경기 부양 차원에서 대형 국책공사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2009년 공공공사 발주물량이 58조 4875억 원으로 최근 10년 내 가장 많다. 전년에 비해서는 무려 16조 6387억 원 늘었다.

공공공사 발주 수주액

건설업계는 일시에 한꺼번에 공사물량이 쏟아지면서 소화불능에 빠졌다. 게다가 대부분 공사가 공구분할 방식으로 시차를 두지 않고, 한꺼번에 일괄 발주로 나왔다. 일부는 조기준공 옵션이 붙어 있었다. 4대강 공사가 그랬다. 반면 대형 국책공사를 수행할 건설사들은 몇몇 1군건설사로 제한됐다. 제한된 시간과 인력으로 대형 공사를 적기에 마무리 짓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건설사들은 머리를 맞댔다. 서로 '잘하는, 잘 아는' 공사에 입찰하기로 합의를 봤다. 공사 경험이 덜하고, 자신이 없는 공사는 피했다. 사실상 정부가 요청한 대형 공사를 예정된 기일 내에 마무리 짓기 위한 협조 차원의 담합이었다. 그리고 밤낮없이 공사를 강행해 겨우 준공을 마쳤다.

그로부터 3년, 건설업체에 ‘담합'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공정위로부터 잇따라 담합 제재가 내려졌다. 검찰 고발이 이어지고, 발주처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들어왔다. 또 부정당업체로 입찰참가자격 제한 받을 위기에 처했다. 주요 임원들이 줄줄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일부는 사장이 징역형을 받았다.

또 2009년을 전후해 발주가 이뤄진 대형 국책공사 담합 과징금만 무려 1조 원에 육박한다. 건설사들은 결국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신뢰 하락으로 해외사업 수주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담합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앞으로 같은 잘못을 저지를 경우 중형을 달게 받을 각오가 돼 있다"며 "다만, 금융위기 직후인 당시 사회적 환경이 구조적으로 담합을 할 수밖에 없는 유인이 있었다"고 했다.

담합제재 주요공사

◇정부, 조기 준공 요구…인건비·간접비 늘어 '적자 허덕'

건설사들은 입찰 담합으로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사실상 원가공개를 꺼리는 탓에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일부에서는 가격 담합으로 국민 혈세를 챙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대형 공사 입찰 담합에 참여한 다수의 건설사들이 정부의 공기 단축 요구로 인건비와 간접비가 불어나면서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제한된 시간 내 무리하게 공사를 수행하면서 비용이 초과지출 된 것이다. 특히 4대강 공사에 참여한 주요 건설사들은 정부를 상대로 늘어난 공사비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담합 협의로 과징금을 부과 받은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공기 연장과 설계변경 등 의 영향으로 10%가량 손실을 봤다"고 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 발주 공사의 실행가가 85%에 달한다. 하지만 지금은 관급공사 실행가가 98%로 올랐다. 정부 공사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가상승 영향으로 자재비 등이 대폭 오른 반면 실적공사비는 오히려 하락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담합으로 호위호식을 했다면 벌을 달게 받겠다"며 "공정위의 제재는 외생변수에 취약한 건설산업의 특징과 담합 유인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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