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4년 08월 11일 16: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은행이 이달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 실세 중의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이후 한국은행이 현재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그래서 통화정책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다. 신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만우절인 4월 1일 취임한 이후 꾸준히 금리인상에 대한 의지를 피력해 왔지만 그의 말들은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없다.
초이노믹스의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이주열 총재와 한국은행이 일관된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였다면 이렇게까지 순식간에 흐름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주열 총재와 한국은행은 최 부총리의 등장과 함께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지금보다 금리를 2% 더 높여도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던 곳이 거꾸로 금리인하의 명분을 쌓고 있다. 이주열 총재의 "성장세가 주춤하다"는 발언이나 최근 인플레이션 보고서에서 "소비자물가의 하방위험이 크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눈치 빠른 금융시장의 분석가들은 한국은행이 지리멸렬 패퇴하는 것을 진즉에 알아챘다. 노무라, 모건스탠리 등 외국 투자은행을 필두로 국내 금융기관 소속 이코노미스트들도 앞다투어 '한국은행이 8월에 금리를 내릴 것'이라며 전망을 수정했다. 이주열 총재의 등장과 함께 지폈던 금리인상론을 슬며시 집어넣는 보면서 한국은행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뚝심이 없다는 것도 들통이 나고 말았다. 이만하면 (실제 금리인하 여부와 관계없이 지금까지의 상황 전개 만으로도) 이 총재와 공식적인 만남을 갖기도 전에, 한국은행과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않고, 중앙은행의 독립성 따위는 무시하고, 금리인하를 밀어붙인 최 부총리의 완승이다.
이번 금리인하 논란은 여러 모로 유감이다.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이유도 많고 올려야 한다는 이유도 많지만, 대부분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에 지금 필요한 처방이 금리인하라고 보지 않는다. 금리인하는 경기가 정상적인 궤도 아래로 떨어졌을 때 쓰는 '자극'이지, 단지 성장률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고 동원하는 수단이 아니다. 잠재성장률에 가까운 3%대 후반의 성장률이 금리를 내려야 할 정도로 낮다고 볼 수 있는가.
물가상승률이 낮아서 금리를 내릴 여유가 있다고 하는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 시기는 물가가 높을 때 보다 낮을 때가 더 많았다. 물가는 낮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은 높을 때, 즉 향후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을 때 금리를 올린다. 이것이 바로 모든 중앙은행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선제적 통화정책'이다.
시중에 유동성이 부족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게 금리인하다. 그런데 과연 유동성이 부족한가. 은행의 예금금리나 대출금리, 기업의 조달금리는 모두 역사상 바닥이다. 금리를 인하하면 시중의 유동성은 단기화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미 지금 너무 많은 유동성이 단기에 몰려 있다.
최근 한국의 금융시스템이나 금융시장이 글로벌 트렌드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번 금리인하 논란은 왠지 섬뜩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세계는 금융규제를 갈수록 강화하고 있는데, 심지어 중국마저도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을 때려잡고 있는데, 거의 유일하게 한국만이 모든 규제를 풀겠다고 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ed)을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융위기 이후 과도하게 내린 기준금리를 올려 또 다른 '위기'의 잉태를 막고자 하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경제 살리기에 중앙은행도 동참하라며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가 목적지까지 문제없이 잘 가려면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가 필요하듯이 경제도 사고 없이 잘 굴러가려면 엑셀레이터와 함께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성장률을 추구하는 정부가 엑셀레이터의 속성을 어쩔 수 없이 갖는다면, 중앙은행은 경제안정(금융안정+물가안정)을 책임지는 브레이크라고 할 수 있다. 정책공조는 그렇게 하는 것이지 브레이크더러 엑셀 노릇까지 하라고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번 논란의 가장 큰 비용은 중앙은행에 대한 금융시장의 경외심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한 것은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정책을 금융시장이 신뢰하고 그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야 정책효과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을 이끄는 것은 이주열 총재이지만, 통화정책은 그의 뜻이 아니라 최경환 부총리의 뜻에 따라 방향이 결정된다면 누가 중앙은행의 존중할 것이며, 그런 중앙은행의 정책에서 무슨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금리를 올려도 욕을 먹고 금리를 내려도 욕을 먹는다면, 중앙은행으로서 존재감을 지키면서 욕을 먹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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