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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흐름 읽기 [Credit View]

윤영환 서울신용평가 평가사업본부장공개 2014-09-23 10:48:53

이 기사는 2014년 09월 22일 11: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어느 날, 엄청난 수의 멍청한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멍청한 돈을 보유한다. 그러면 투기가 일어난다. 그러면 공황이 일어난다." 고전파 경제학자 월터 배젓(Walter Bagehot)의 통찰이다. 더욱이 자기자금과 달리 신용의 쏠림은 레버리지와 유동성 이슈로 인해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킨다.

또한 신용흐름은 새로운 기회를 읽는 유용한 방법이다.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신용이 흘러 들어가면 경제는 건강해진다. 소위 '빵을 만드는 금융'이다. 비제조업보다는 제조업,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으로의 신용흐름이 보다 건강하다는 것이 역사적 통찰이다.

부동산금융과 거품

2000년대 중반 우리 시장의 부동산 거품을 신용흐름 측면에서 살펴보자. 가장 기본적인 접근은 수요자 금융과 공급자 금융을 비교하는 것이다. 지표로는 예금은행의 건설부동산 산업대출(공급)과 가계대출(수요) 증가율을 선정했다. 비은행권의 부동산금융 확대를 감안하더라도 부동산시장의 신용흐름을 설명하는 지표로 이만한 것이 없다.

당장 두 가지 현상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가계대출 증가율이 기조적으로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건설부동산 산업대출 증가율의 변동폭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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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은행의 건설부동산 산업대출(공급)과 가계대출(수요) 증가율

주택시장이 과열조짐을 보이던 2005~2006년 당국은 가계대출(특히 주택담보대출) 급증 억제대책을 집중적으로 내놓았다. 반면 공급자 금융은 시장자율에 맡기다가 2007년 9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건설PF 관련 규제에 나섰다.

결국 2006~2007년 사이의 공급자금융 초과공급은 곧바로 미분양 등 주택공급과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2008년의 조정에 이은 2009~2011년의 디레버리징은 건설업계의 연쇄적 신용위기로 귀결되었다.

아래 그림은 예금은행의 산업대출에서 건설부동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것이다. 대략 그 비중이 19% 전후일 때가 안정기였다. 국민총생산에서 건설부동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도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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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은행의 산업대출에서 건설부동산업이 차지하는 비중

이 그림을 보면 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 편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더불어 이제는 은행의 건설부동산업 디레버리징이 대체로 마무리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회사채시장과 중소기업

최근의 미국 경기 회복은 제조업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어떤 이는 셰일가스(Shale gas) 개발로 에너지 비용이 낮아진 덕분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오바마 정부의 인프라투자 확대에 방점을 찍는다. 모두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그런데 미국의 기업경영분석(Quarterly financial report)을 보면 흥미롭게도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실적개선이 더 뚜렷하다. 결국 신용흐름 측면의 설명이 하나 더해진다.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공급 확대, 바로 하이일드 회사채시장 활성화 효과다. 글머리에서 설명했던 건강한 성장이다. 오래가고 부작용도 적다는 의미다.

2013년 미국 하이일드 회사채의 발행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6년에 비해 129.3% 증가했다. 같은 기간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이 13.7% 증가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같은 기간 하이일드의 비중은 13.8%에서 24.5%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우리나라 회사채시장은 중소기업 금융에 도무지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중소기업의 신용흐름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기업신용의 3분의 2를 은행이 공급하고 있고, 은행의 중소기업 신용공급은 큰 이상이 없다. 그저 우리 회사채시장이 모처럼 다가온 도약의 기회를 양적 확대에서 멈추고 질적 심화로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업의 단기신용 의존

한미 제조업체들의 재무구조를 비교해보면 부채비율은 비슷해졌지만 단기신용에 대한 의존도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인다.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반응 속도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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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개별기업 유동성리스크 분석에는 현금흐름 또는 총자산과의 비교를 병행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기업들의 단기신용 의존도가 낮으면 금융경색이 발생하더라도 쉽사리 신용위기(=기업연쇄도산)로 이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금융위기 대응과 금융시스템 재구축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미국이 그런 경우다.

반면 기업들의 단기신용 의존도가 높으면 금융위기는 곧바로 기업의 연쇄적인 신용위기로 이어진다. 그래도 금융시장 개방도가 낮을 때는 관치의 힘으로 어쨌거나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완전 개방되어 있는 경우에는 신용위기에 글로벌 금융자본의 대규모 이탈까지 겹치면서 더욱 큰 곤경을 겪게 된다. 자칫 시스템 붕괴 또는 경제주권 손상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개별 기업의 신용도도 마찬가지다. 최근 신용위기를 겪은 기업들 대부분이 단기신용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스스로 공격적 재무전략을 선택한 경우도 있고, 시장의 신인도 하락으로 장기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진 경우도 있었다. 사연이 무엇이든 기업의 단기신용 의존도 상승은 분명히 위기신호였다.

신용등급도 높은 기업이 단기간에 CP 등 단기차입을 크게 확대하는 경우도 종종 관찰된다. 상당수가 제도적 또는 모기업의 우산에 의존하는 도적적 해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반드시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리한 사업전개나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알려진 바와 달리 상당한 재무적 곤경을 겪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규모에서 속도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고성장-저효율-관치'에서 '저성장-고효율-자율'로 넘어가면서 신용이슈의 속성도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규모가 절대 요소였지만 갈수록 속도가 더 민감한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레버리지에서 유동성리스크로 쟁점이 점차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정적인 세상보다는 동적인 세상이 더 재미있다. 신용이슈도 갈수록 더욱 흥미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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