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4년 10월 06일 07: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메리츠자산운용의 존리 대표는 요즘 언론이 가장 자주 찾는 펀드매니저 중 한 명이다. 최초의 한국기업 집중투자 펀드인 스커더자산운용의 '코리아펀드'를 15년간이나 운용했고, 소위 장하성펀드라고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를 처음부터 운용한 그의 화려한 이력은 물론이거니와 한국행을 결정하면서 수익률 꼴찌인 메리츠자산운용을 직장으로 선택한 배경, 메리츠금융그룹의 최고위층을 설득해 자신의 임기를 없애고, 계열사 경영진 회의에 참석하지도 , 윗사람을 의전하지도 않는 등, 한국인스럽지 않은(?) 파격적인 행보는 그 자체가 흥미로운 이야기다.마치 늙은 말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마도 그는 스스로를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운용사마다 펀드가 수백 개에 달하지만 담고 있는 종목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 복제품처럼 보이고, 그 많은 펀드의 포트폴리오가 1년에 무려 7~8회나 완전히 갈아치울 정도로 엄청나게 자주 교체매매되고 있다는 건 그에게 비상식이다. 펀드란 고이 고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 '팔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에게는 고객을 위해 일해야 할 운용사가 주주를 배 불리기 위해 고객을 속여 온 배반의 역사다.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이 생각보다 너무 적어 놀랐다고 한다. 심지어 자산운용사 직원조차 주식형 펀드를 보유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반면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마치 복권을 사거나 카지노에 가는 것처럼 해서 또 놀랐다고 한다. 아마 그의 눈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오너가 집합명사로서의 주주가 아닌 주주 중의 '이(李)씨'와 '정(鄭)씨'인 것도, 이사회가 아닌 특정한 1인의 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도,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가장 큰 이유가 오너의 아들과 딸에게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비상식으로 보일 것이다.
존리 대표는 주식투자 전도사를 자처한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것 외에도, 아파트 부녀회든 고등학교 동문회든 아니면 어떤 친목단체든 기회가 되고 시간이 되면 마다 않고 달려가 '주식을 사지 말고 기업을 사야 한다'는 그의 '투자론'을 설파한다. 주식을 사지 말고 기업을 사라는 말은 곧 투기꾼이 아닌 주주가 되라는 말이고, 될 성 싶은 기업을 골라 장기투자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1985년 4000원 하던 삼성전자가 400배 오르고 현대자동차가 역시 4000원 남짓에서 45배 오르면서 는 이건희 회장과 그의 자손들이, 정몽구 회장과 그 일가들이 국내 최대의 부자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일반 국민들도 부자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일반 국민이 부자가 돼야 우리나라가 부자나라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국내 기업들의 주가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바로 국내 기업들의 이상한 지배구조와 지배문화 때문이다. 지금의 대주주를 위한 대주주에 의한 대주주의 지배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머지않아 바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월가에서 날리던 그가 '지금' 한국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상한 나라에 스스로 찾아 온 앨리스다.
현대차그룹이 미래의 사옥을 짓기 위해 한국전력 삼성동 부지를 10조 원이나 주고 산 그날 만난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져 있었다.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기업의 주가순자산배율(PBR)이 0.8배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저평가돼서 잔뜩 사놨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몇 명은 명백한 배임이라며 소송이라도 걸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갑은 커녕 을도 병도 되지 않는 운용사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넋두리일 뿐이다. 엄연히 현대차의 주주이지만 '주주입네'해서는 안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올해 내내 금융계의 핫(hot) 이슈였던 KB금융 사태도 IBM과 계약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룹 내 보고 체계가 어떻고 하지만 결국 핵심은 지배구조 문제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후 화학적인 융합에 실패한 데다 낙하산 회장님들을 모시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KB금융지주의 PBR은 고작 0.57배에 불과하다.
저 두 개의 사건을 보면서 존리 대표는 무슨 생각을 할까. 비상식적인 한국기업의 지배구조가 바뀌려는 파열음으로 받아들일까,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는 변화가 예상보다 늦어지겠구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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