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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 운용사 득세냐 은행 독식이냐 ③기존 사업자 반발…"은행권 독식 가능성도"

최은진 기자공개 2014-10-24 08:17:42

[편집자주]

정부와 금융투자업계가 근로자 수급권 보호를 통한 노후 연금확보를 목표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퇴직연금의 자본시장 유입을 통한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기대도 깔려 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전문가들의 의견과 해외 사례 등을 통해 기금형 퇴직연금의 주요 이슈를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14년 10월 21일 10: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기존의 계약형 제도에서 은행과 보험, 증권으로 삼분됐던 퇴직연금 사업자시장에 자산운용업계가 가세하는 형국이 된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기업이 사외에 퇴직연금 적립금을 신탁해 운용하는 제도로, 연기금 운용 경험을 갖춘 자산운용사들이 퇴직연금 시장의 새로운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기금형이 도입되면 자산운용사가 혜택을 보면서 최소한 수십 조원에서 백 조원 이상이 자본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희망섞인 기대다. 그러나 오히려 기업과 대출(Loan) 관계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은행권의 독식 가능성이 더 크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 기금형 제도, 자산운용사의 전면 등장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자산운용사가 퇴직연금 시장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확정기여형(DC)형과 확정급여형(DB)형과 별도로 꾸려진 기금 법인(가정)과의 자산운용 위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사외 적립금을 증권사와 은행, 보험이 아닌 펀드를 굴리는 자산운용사에 곧바로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기금형 도입으로 퇴직금의 수익률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펀드 형태의 상품을 다루는 자산운용사의 입지가 커질 수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계약형과 달리 기금형이 도입되면 기금이 자금 운용 지시를 바로 하거나 혹은 일정 수준의 가이드 내에서 자율적인 운용을 할 수 있는 자산운용사와의 거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6월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가운데 92.6%는 예금·적금 등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금리도 하락세다. DB형의 경우 원리금보장상품의 올해 평균 금리는 3.07%로, 4.39%를 기록한 2012년과 비교해 1.32%포인트 내려갔다. 87조 원의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가운데 81조원 이상이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수익률을 무기로 자산운용사가 이 틈바구니에 끼어들 수 있게 된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운용사들은 은퇴 재원인 개인연금과 국민연금 운용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안정성과 수익성을 함께 추구하는 전략으로 은퇴 재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최초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운영을 앞두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측도 도입 초기에는 대부분의 자금을 자산운용사에게 기금 운용을 위탁할 방침이다. 기금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운용역 확보 등에 과다 비용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다만 기금 규모가 커지면 자체 운용 전문성을 키워 직접운용도 병행한다는 계획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계약형 제도 하에서는 대부분의 기업이 하나의 금융회사에 자산관리와 운용관리를 모두 맡기는 번들형으로 운영되는 점을 감안, 복수의 사업자 구도로 변화할 수도 있다. 단수 사업자의 경우 과도한 자사상품 편입 등 운용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들은 반색할 수밖에 없다. 수익률 뿐 아니라 기금형 제도가 계약형 제도보다 안전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퇴직급여 적립금이 기업, 퇴직연금 사업자로부터 분리돼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독립된 기금 내에 노·사·외부 전문가가 모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설치돼 운용 전략을 결정하기 때문에 근로자의 운용 결정권이 더 높아진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관계자는 "기금형 제도 도입으로 기존 사업자들이 먹거리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며 기금형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며 "금융회사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의 은퇴재원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기존 사업자들 불편한 심기…"은행권 독식 가능성도"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초기단계지만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은 심상찮다. 은행·보험·증권 3파전에서 자산운용사가 가세하면 그만큼 각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기존 사업자들은 기금형 제도가 우리나라 실정 상 시기상조라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할 정도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기금형 제도의 안전 장치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일본을 기금형 제도의 실패사례로 꼽는다. 지난 2012년 일본의 퇴직연금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AIJ자산운용은 매년 큰 폭의 손실을 내고도 부실을 감췄던 사실이 발각됐다. 투자 손실로 기금의 90%가량을 날렸고, 결국 퇴직금 미지급 사태까지 발생했다. 따라서 금융사고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는 주장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금형 제도는 기금운영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관이 필요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인력이나 기관이 부재하다"며 "섣부르게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에 앞서 충분한 논의를 한 이후에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 역시 "수익률 제고 부분에 대해서는 기금형이라는 새로운 제도에 의존하려 하기 보다는 현재의 계약형 제도 하에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더 낫다"고 밝혔다.

특히 기존 계약형 제도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대기업들이 기금형 제도로 전환하게 되면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6월 기준 300인 이상 대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76%인 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15.5%에 불과하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와 도입률이 높은 대기업이 기금형으로 빠지게 되면 기존 사업자들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일부에서는 기존 중소형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퇴직연금 사업 자체에서 아예 철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하고 있다. 퇴직연금 조직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한데 비해 먹거리가 크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퇴직연금 사업을 하려면 시스템은 물론 영업 인력과 관리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기금형 제도로 중소기업들과 대기업들이 몰려간다면 사실상 중소형 사업자로서는 설 자리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밝혔다.

당장 근로복지공단의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기존 사업자들이 가지고 있던 적립금을 내놔야할 상황이다. 현재 근로복지공단과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에 삼성화재와 우리은행이 예금과 펀드 등 투자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삼성화재와 우리은행이 관리하던 적립금 중 일부가 기금으로 넘어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금형이 도입되면 은행권의 독식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기업 대출을 무기로 퇴직연금 운용·관리 업무를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꺾기'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금융권 관계자는 "기금형이 도입되면 자산운용사가 좋을 거라고 하는데 은행은 개별 기업과의 대출 관계가 있어 퇴직연금도 대출 익스포저가 많은 주거래은행이 전담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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