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4년 10월 29일 07: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조 원가량의 퇴직금 추계액을 쌓아놓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가 퇴직연금 사업자를 최종 선정하고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도입 절차에 들어갔다. 사업자는 은행·증권업권에서 각각 11개사, 보험업권에서 15개사로, 모두 37개사를 뽑았다. 퇴직연금 사업을 하는 금융회사가 46곳인 점을 감안했을 때 대부분의 사업자가 선정된 셈이다.당초 한국전력공사 측은 23개 사업자를 선정할 방침이었다. 지난 2010년 직원 수 1만여 명인 한국수력원자력이 10개 사업자를 선정한 사례가 있어, 직원 2만여 명의 한국전력공사는 20곳 정도의 사업자가 적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퇴직금은 직원들의 몫인 만큼 최대한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아, 막판에 결과를 뒤집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직원 선택권을 넓힌다는 좋은 취지가 무색하게 제도 도입 절차가 진행될수록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사업자들끼리의 이해관계와 의견이 다를 뿐 아니라 업권 회사별 업무처리 과정이나 시스템 등이 상이해 의사결정이 매끄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다음주부터 20여개 지역에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상담부스를 설치할 예정이지만, 아직 지역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올해부터 도입하려고 했던 혼합형 퇴직연금 제도도 일부 사업자들이 시스템을 완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행이 아예 내년으로 미뤄졌다.
직원 입장에서도 지나치게 사업자가 많은 것이 마냥 좋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사업자를 기업이 걸러 주지 못하면 직원들이 선택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한국전력공사가 선정한 37개 사업자 가운데 퇴직연금 계약실적이 10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2 개사나 됐고, 일부 사업자는 퇴직연금 사업이 주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프라나 서비스 개발을 사실상 멈춘 상태다.
퇴직연금은 장기 운용 재원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업자 역량이 중요하다. '이 사업자가 퇴직연금 제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지', '내부적으로 퇴직연금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는지', '서비스나 시스템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등 평가해야 할 항목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짧은 시간 직원들이 일일이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역량을 따지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퇴직연금 파트너를 선택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 직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일주일. 이 기간동안 직원들은 점심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잠시 시간을 내어 37개 사업자를 모두 만나고 퇴직금을 맡길 파트너를 결정해야 한다. 사업자 하나하나 속속들이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한국전력공사의 사업자 선정 절차는 사실상 '선정'이 생략된 것과 다름이 없다. 탈락한 게 이상할 정도로 대부분의 사업자를 다 나열해 놓고 직원들의 '선택권'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고 있다. 시장은 식당이 될 수 없다. 메뉴판을 기다리던 손님에게 무작정 날감자나 생닭을 가져다 줄 순 없다. 자칫 '도떼기 시장'으로 끝날지도 모르는 한국전력공사 퇴직연금 도입 절차의 개선 작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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