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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기금형' 퇴직연금인가 [thebell note]

이승우 기자공개 2014-11-12 11:37:02

이 기사는 2014년 11월 11일 07: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푼돈을 한 데 모아 굴리면 수익성이 정말 개선될까. 그리고 모아진 뭉칫돈은 누가 운용하게될까.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앞두고 불리한 입장에 처할 것으로 보이는 증권회사들이 제기하는 의문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중소기업, 내후년에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허용하면서 자산운용업계와 은행업계에서도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증권회사가 내켜하지 않는 기금형 퇴직연금의 선봉에 의외로 금융투자협회가 서 있다. 퇴직금이 국민연금과 교직원공제회 등과 같은 기금 형태로 전환하면 뭉칫돈이 자본시장으로 적극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금투협을 자극했다.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의 공약이기도 하다.

그런데 증권회사들의 분석은 금투협과 사뭇 다르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되더라도 증권회사는 물론 자산운용사들도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은행들에게 좋은 일을 금투협이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자산운용사들에 기금형 퇴직연금은 기회일 수 있다. 퇴직연금 기금이 자산운용사를 통해 직접 자금 위탁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증권사는 그동안 펀드로 끌어들인 자금을 자산운용사에게 뺏길 수 있다. 퇴직연금 기금이 증권사를 거치지 않고 자산운용사로 곧바로 가게 된다면 증권사는 자산관리, 흔히 말하는 단순 수탁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자산운용사들도 그리 수월하게 따먹을 수 있는 시장은 아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은행들에 열리기 때문이다. 기업금융, 즉 '대출'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은행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출을 무기로 한 퇴직연금 '꺾기'가 흔한데 계약 당사자나 창구가 단일화되는 기금형태로 전환되면 증권회사나 자산운용사는 게임도 안될 수 있다. 업권간, 사업자간 노하우나 서비스 등의 경쟁이 아닌 기업 생사와 직결되는 '대출'로 인해 퇴직연금 시장 판도가 퇴행할 부작용이 있는 셈이다.

은행권으로 퇴직연금이 쏠린다는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예적금 위주 저수익·안전자산 위주로 운용되는 은행권의 퇴직연금 관리와는 또 다른 선택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당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 DB든 DC(확정기여형)든 은행 퇴직연금 수익률은 증권사에 비해 대체로 낮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금형 퇴직연금이 은행들의 점유율 확대만 가져올 뿐 수급권자는 물론이고 기존 사업자 다수의 이해가 박탈당하는 변화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의 또 다른 문제는 비용이다. 현재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기금형 퇴직연금의 경우 기금관리운용위원회(가칭)를 설치해야 한다. 한 데 모아진 퇴직금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짜고 실제 자금 집행을 하면서 리스크 관리도 해야 하는 핵심조직이다. 하지만 이 조직의 비용은 고스란히 퇴직연금의 수익률에서 차감된다. 현재 확정급여형(DB형)의 경우 연간 2~3% 내외의 수익률 정도에 머물고 있는데 위원회 설치와 관리로 소모되는 비용을 무시하기 힘들다. 퇴직금을 별도로 분리해 놓지 않는 게 다반사인 중소기업은 퇴직금을 기금으로 분리하는 그 자체가 회사 생존과 직결될 수 있다. 주요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책임이 뒤따를 수 있는 위원회 참석에 대해 노조도 부담스러워하는 게 사실이다.

물론 기금형 퇴직연금에 대해 학수고대하는 쪽도 있다. 기금위원회 구성의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이는 외부 전문가그룹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 교수들의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돈을 굴리는 것도 아니고 끝까지 책임질 일도 없지만 보수는 꼬박꼬박 챙길 수 있는 꽤 괜찮은 자리다. 현재 여타 기금의 외부 전문가 그룹은 자리가 몇 개로 한정돼 있어 치열하지만 기업들의 퇴직연금 기금은 그 숫자가 또 얼마나 많을까.

협회가 주도하는 금융투자업계는 물론이고 해당 기업, 근로자 등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럼에도 생각보다 윗선에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기금형 퇴직연금, 과연 누굴 위한 것일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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