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4년 11월 26일 08: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제약업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녹십자다. 올 초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막아 서며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의 불을 지핀 한편 국내 제약사로는 최초로 캐나다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추고 북미시장 직접진출에 나섰다.실적에도 날개를 달았다. 백신과 혈액제제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실적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녹십자가 매출액 기준으로 업계 2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는 유한양행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규모지만 녹십자의 내실 있는 경영에 주가도 1년 새 20% 넘게 상승했다.
녹십자의 숨 가쁜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인 M&A와 실적성장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반면 아직까지 후계구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 시점이 임박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차기 경영권을 놓고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형에서 동생으로 경영권이 이어진 탓에 향후 2세 승계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대외적으로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사실상 허일섭 회장의 뜻대로 녹십자의 후계구도가 준비되고 있다. 허 회장은 그간 꾸준히 자기 지분을 늘리고 세 자녀들의 지분 확보까지 챙겨왔다. 적극적으로 경영권을 사수하고자 하는 숙부에 개인적 용도로 보유 지분을 모두 팔아치운 어머니까지 고 허영섭 회장의 아들(은철, 용준)들이 경쟁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이들은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 지분을 조금씩 처분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 허 회장의 장남 허성수 씨가 4년만에 지분을 상속받게 돼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상속에서 제외된 허 씨는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해 100억 원에 가까운 녹십자 지분을 얻었다. 현 회장의 세 아들(진성, 진영, 진훈)과 전 회장의 세 아들(성수, 은철, 용준)이 모두 유의미한 지분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현재로선 경영일선을 떠난 지 오래인 장남 허 씨가 지분 상속을 기점으로 다시 후계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낮다. 뿔뿔이 흩어졌던 고 허 회장 3형제가 다시 뭉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하지만 판을 잘 짜고 있던 허 회장이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란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물 밑에서만 진행되던 후계작업이 허성수 씨의 등장으로 수면 위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경영권을 물려받은 숙부가 어떤 방식으로 지배구조의 판을 짤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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