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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家 분쟁과 '함흥차사' [thebell note]

정호창 기자공개 2015-11-02 09:24:00

이 기사는 2015년 10월 30일 08: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조선의 기틀을 세운 철혈군주 태조 이방원은 왕위에 앉기 위해 많은 피를 손에 묻혔다. 정몽주, 정도전 등 당대의 석학은 물론 피를 나눈 형제들도 그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두 차례 '왕자의 난'에서 승리해 왕좌를 손에 넣었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상왕으로 물러나 함흥에 칩거했다. 이방원은 아버지를 달래고 왕위 계승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함흥에 여러 차례 차사를 보내 이성계의 귀경을 청했다.

하지만 이방원에 대한 노여움을 풀지 않고 있던 이성계는 분노를 아들의 사신에게 풀었다. 오는 차사마다 잡아 가두거나 죽였다. 소식이 없거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는 '함흥차사'란 말의 유래는 여기에서 나왔다.

결국 '함흥차사'는 권력 다툼 과정에서 생겨난 '희생자'나 '피해자'를 칭하는 다른 이름인 셈이다.

#국내 재계 5위인 롯데그룹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창업주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두 아들인 신동주·동빈 형제가 그룹 경영권을 놓고 한치의 양보 없는 싸움을 진행 중이다.

두 아들 중 누가 이방원(승자)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결과에 상관없이 신 총괄회장이 말년의 이성계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우려되는 점은 신 총괄회장 두 아들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함흥차사'가 생겨날 것인가이다.

롯데그룹의 고위 관리자와 가신들은 현재 두 형제 중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도를 지키려 해도 선택을 피할 방법이 별로 없다. 양측의 갈등과 분쟁이 심화될수록 현실은 그들이 반드시 한 쪽을 선택하도록 몰아갈 것이다.

권력 다툼의 결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면 숙청의 칼바람이 부는 건 역사가 증명하는 이치다. 신 총괄회장 두 아들 중 어느 쪽이 경영권을 틀어쥐건 상대 진영에 섰던 인물은 더 이상 롯데그룹에서 일하지 못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현재 동생인 신동빈 회장이 한일 양국의 롯데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아직은 승부의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워 누가 가슴에서 롯데 배지를 떼게 될 지 알 수 없다. 권력 다툼에 적극적으로 앞장 선 인물일수도,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유탄을 맞은 피해자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룹 발전에 기여할 인재 다수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업은 특정 개인의 능력만으로 유지, 발전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롯데그룹 역시 신 총괄회장이나 두 아들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67년간 수많은 임직원들이 피와 땀, 젊음과 열정을 바쳐 이룩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그룹 발전에 사력을 다한 임직원들이 본인의 업무상 과오나 실수가 아니라 '줄서기'의 결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은 부당하며, 그룹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이를 피할 수 없게 된 만큼, 모쪼록 앞으로 롯데그룹에서 발생할 '함흥차사'의 수가 많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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