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11월 02일 16: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중후장대산업에 대한 오랜 염원이 아들 신동빈 회장이 주도하는 화학사업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은 1960년대 중화학공업과 철강산업에 대한 투자를 시도했으나 정부의 만류로 결국 제과·유통 사업으로 방향을 돌린 바 있다. 이후에도 신 총괄회장은 포항제철 인수를 시도하는 등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30일 삼성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정밀화학의 지분 31.5%(삼성 BP화학 지분 49% 포함),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문 분할신설 법인의 지분 90%를 각각 인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에 인수 절차가 완료된다.

롯데케미칼은 인수 후 연결 재무제표를 기준 매출이 기존 17조1000억 원에서 21조2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하이마트, 롯데카드, 세븐일레븐 등이 포함된 롯데그룹의 주력사 '롯데쇼핑'의 연간 연결 매출 28조 원의 7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렇게 되면 2014년 롯데그룹 전체 매출을 기준, 화학사업의 매출비중은 기존 21%에서 25%로 4%포인트 상승한다. 지난해 롯데그룹 내에서 유통사업부의 매출비중은 43%로 가장 높았고, 이어 화학·건설사업부는 29%, 관광·서비스사업부는 13%, 식품사업부는 10%, 금융사업부는 5%를 각각 차지했다.


롯데그룹 내 화학·건설사업의 매출 비중은 1990년 29%, 2000년 22%, 2010년 31%, 2014년 29%로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인수를 통해 롯데그룹이 화학사업 강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유통에 쏠려 있던 사업의 축이 화학사업으로 본격 나눠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롯데그룹의 화학사업 강화는 롯데그룹이 유통사업 외의 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점 외에도 신격호 총괄회장의 꿈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신 총괄회장이 철강 등 중공업사업 진출에 관심이 많았으나 정부의 만류로 좌절됐다는 이야기는 재계 안팎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딸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역시 '롯데와 신격호'라는 책을 통해 "원래 아버지가 하시고 싶어했던 사업은 철강, 자동차, 가전사업과 같은 중공업 쪽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1960년대 신 총괄회장은 박정희 정권에서 종합제철소 건설을 부탁하자 일본 제철기업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를 만드는 등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돌연 정부가 철강사업은 국가가 직접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그는 롯데제과를 통해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로 신 총괄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민영화가 추진됐던 포항제철을 인수하려고 시도하는 등 중공업사업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신 총괄회장의 중후장대산업에 대한 열망은 철강이 아니라 아들 신동빈 회장이 키운 '화학'사업을 통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지난 1979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이 민영화될 때 당시 공기업이었던 여수석유화학이 보유하고 있던 호남석유화학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화학사업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화학사업이 커진 것은 1990년 신동빈 회장이 롯데케미칼을 통해 한국경영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신 회장은 롯데케미칼을 통해 롯데대산유화(현대석유화학 2단지)와 케이피케미칼을 인수한 데 이어 2010년에는 말레이시아 석유화학업체인 타이탄케미칼을 사들였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인수로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직계열화와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가 가능하게 됐다. 롯데케미칼은 기존에 올레핀과 아로마틱,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PMMA) 유기계면활성제 (EOA) 제품만 생산했다. 하지만 이번 인수를 통해 고부가 합성수지(ABS), 폴리카보네이트(PC), 염소·셀룰로스 계열 정밀화학, 기초화학, 전자재료 등 기능성 소재부분을 강화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