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12월 07일 07: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거화취실(去華就實).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생활신조다. 반세기 넘게 롯데그룹을 지탱해 온 신 총괄회장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지난 1941년 무일푼으로 일본에 건너간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일 양국을 통틀어 연 매출 약 85조 원(2014년 말 기준)의 롯데그룹을 일궜다. 알려진 것처럼 껌과 과자를 팔아 출세했다. 전후 일본에서 비누, 크림 등을 팔았으며 천연 치클로 만든 껌을 개발해 돈을 벌었다.
그의 성공담 뒤에는 늘 거화취실이라는 좌우명이 따라 붙었다.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하며, 부지런함을 좇는 경영철학이 오늘 롯데를 만들었다고 했다. 여기에는 평소 밖으로 드러나는 걸 꺼리는 신 총괄회장의 성격도 일부 작용했다. 거화취실은 어느덧 롯데를 대표하는 사훈이 됐다. 그렇게 57년여 시간이 흘렀다.
롯데는 그러나 우리에게 늘 가깝고도 먼 그룹이었다. '보수적인' '단절된' '변하지 않는' '비밀스런'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 붙었다. 모든 일이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 지난 1967년 한국 상륙 후 일본에서 소리 소문 없이 돈이 들어왔고, 투자가 단행됐다. 서울 잠실에 대규모 놀이동산이 들어서고, 백화점이 지어졌으며, 마트가 속속 채워졌다.
필요한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핵심 계열사를 비상장으로 뒀다. 금융당국에 제출하는 사업보고서는 수년 전까지 한자로 만들어졌다. 사치를 멀리한다고 했으나 집안 경조사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였다. 거대 마천루로 불리는 잠실 롯데월드타워 사업을 두고는 시작부터 뒷말이 무성했다. 밖에서 보이는 롯데는 소통이 단절된 하나의 거대한 성이었다. 언론도 푸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 롯데가 최근 위기에 직면했다. 발단은 ‘새로운 롯데'를 외치는 차남 신동빈 회장의 반란에서 비롯됐다. 대노한 아버지는 아들과 주변 측근을 형사고발했다. 한평생 일궈 온 그룹을 송두리째 빼앗길 위험에 처했다며 원상복귀를 요구했다.
시작은 신동빈 회장이 했으나 오늘 롯데의 위기는 그 동안 내부에 쌓인 구조적인 모순이 표면화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한국과 일본 롯데를 이끄는 신동빈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뒤에는 사원들이 있다. 수십 년간 거화취실이 쳐 놓은 울타리에 갇혀 있던 롯데 직원들은 지금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천막을 걷어내고, ‘시장과 소통'이라는 햇볕을 쬐고 있다. 각 계열사에 사외이사를 두고, 경영개선 TFT를 만들고, 시장 공개(IPO)를 추진한다. 따가운 햇살에 눈이 부시지만, 소통의 순기능은 마약처럼 롯데 조직에 스며들었다. 이전으로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길을 걸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이번 싸움에서 이긴다면 뜻대로 경영권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롯데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경영권 회복이 곧 롯데의 생존을 의미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새 술에 취한 롯데를 보듬고, 후대 경영인에게 온전히 넘겨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게 그가 그토록 평생 소중히 여겨 온 동료 사원들에 대한 예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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