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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들의 반란 [thebell note]

이승우 기자공개 2015-12-14 10:22:08

이 기사는 2015년 12월 10일 07: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자산관리 시장에 로봇이 등장했다. 로봇이 금융자산 포트폴리오를 정해주고 사후 관리도 해준다. KEB하나은행이 선두주자로 나선 '로보 어드바이저(Robo Advisor)' 얘기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선진국에서 주로 젊은층을 공략하며 자리잡은 자산관리 서비스다. 시장규모가 1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KEB하나은행 뿐 아나라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이 준비를 거의 마치고 서비스 개시를 앞두고 있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등장은 국내 자산관리 시장의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첫째, 로보 어드바이저로 인한 장기 투자 상품 특히 연금 상품의 폭발적 성장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 자체가 장기 투자 포트폴리오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의 급팽창 가능성이다. 로보어드바이저 포트폴리오의 기반이 ETF 위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PB들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 로봇이 정해준대로 자산 배분을 하게 되면 PB들이 고객 포트폴리오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진다. 단순 고객 응대자 정도로 PB들의 역할과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PB들 사이에서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PB들의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게 위기론의 핵심이다. PB들이 해왔던 일들을 로봇이 대신할 것이라는 섣부른 위기감 뿐 아니다. PB 비즈니스가 PB 개인 보다는 본사 차원의 대형화·규격화된 시스템으로 무장하면서 PB들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생기고 있다. 자산관리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핵심 인력인 PB들의 설 자리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자산관리 사업에 눈을 뜬 금융회사들이 가내 수공업 같았던 과거의 PB 서비스를 규격화 시스템화하면서 대형산업으로 전환시켜 나가고 있다. 대형화와 자동화는 인간의 역할을 축소시키기 마련이다. 자산관리 사업의 핵심인 포트폴리오 관리를 시스템화하는 건 결국 PB들의 역할 축소로 귀결된다. 로보어드바이저의 등장은 채널로서의 PB 기능마저 건너뛰게 할 수 있다.

과거에는 PB 그 자체가 브랜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PB 아무개의 네임밸류가 소속 금융회사의 네임밸류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PB 비즈니스의 시스템화는 이를 원천 봉쇄한다. 모 금융회사 임원은 "우리 회사 PB는 개인 역량보다 회사 네임밸류로 영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PB여도 결과는 똑같다"고 말할 정도다. 자산관리 사업의 최대 경쟁력이 PB 개인이 아닌 회사의 신뢰도 혹은 회사의 전략이라는 강한 자신감의 발로다.

소위 잘 나가는 PB들 사이에서 최근 불고 있는 사모펀드 결성 열풍은 이같은 흐름을 간파한 PB들의 반란으로 봐도 무방하다. 시스템이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산관리 서비스와 경쟁력으로 고객에게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승부수는 전통적인 주식운용이나 상품이 아닌 비상장 주식이나 해외부동산 등 차별화된 대안투자 상품이다. 다른 금융회사에서도 볼 수 없고, 같은 회사 다른 PB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상품이다. 물론 결과는 미지수다.

로봇이 자산관리 시장에 등장한 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또 자산관리 사업을 시스템화하고 대형화하는 건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본질이다. 하지만 이 위기론을 PB들 스스로 자초한 건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가벼이 흘려 들은 정보로 주식을 추천하고 고객의 개인사는 알뜰이 챙기면서 정작 자산관리에는 소홀했던 건 아닌지, 그래서 최적의 효율성으로 무장한 로봇에게 PB의 본질을 뺏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국내 PB와 그들의 서비스에 여전히 의문부호가 찍혀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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