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왜 자본금이 필요한 거죠?" 호바트 리 엡스타인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외이사
민경문 기자공개 2016-06-02 08:10:00
[편집자주]
진짜 고수는 공력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비록 지금은 강호를 떠나있지만 한때 자본시장을 주름잡던 실력자들은 곳곳에 숨어 있다. 머니투데이 더벨은 이들을 찾아 국내 캐피탈마켓을 둘러싼 통찰력 있는 '한 수'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 기사는 2016년 05월 30일 13: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증권사가 왜 자본금이 필요한 거죠?"호바트 리 엡스타인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외이사가 인터뷰 도중 던진 갑작스런 화두였다. 국내 증권사들이 인수합병(M&A)이나 유상증자 등을 통한 덩치불리기 경쟁에 '올인'하고 있는 행태를 지적하는 듯 했다. 그는 "무역회사의 경우 자본금이 제로(0)여도 맘만 먹으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증권사의 기본 구조도 무역회사와 같아서 대규모 자본금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증권사의 기본 역할은 캐피탈 프로바이더(투자자)와 캐피탈 유저(발행사)의 중간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는 한국IB들이 이제는 브로커리지 (brokerage) 기능을 넘어서 어드바이저리(advisory)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자기자본을 활용한 '투자'가 핵심이 돼서는 글로벌 IB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 그는 국내 증권사들이 자기자본투자(PI), PEF운용, PF관련 신용보강 등으로 사업영역을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엡스타인 이사는 금융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자본이 3조 원 이상인 증권사를 중심으로 기업신용공여 등의 혜택을 주고 있는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것. 그는 "자기자본을 키우면 키울수록 해당 증권사에는 밸런스 시트(balance sheet)를 사용해 쉽게 돈 벌 수 있는 명분을 주는 셈"이라며 "한국판 골드만삭스라는 명제에 현혹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자본금이 많으면 IB를 잘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문제로 지목됐다. "국내 증권사의 IB 실력이 자기자본 순서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영업력을 높여 고객과의 스킨십을 강화, 고객이 필요한 "금융처방"을 내놓는 것이 IB의 기본이자 능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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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 이사는 "늘린 자본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며 "자본금이 늘어날수록 ROE를 맞추기 위해 무리해서 PI에 주력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고 했다. 차라리 IB어드바이스 서비스를 통한 수수료 수입을 늘려나가는 것이 ROE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왜 은행보다 증권사 직원의 연봉이 높은 지 아십니까?" 그가 다시 물었다. 은행의 경우 대출 이후 가만히 앉아서 이자소득만 받으면 크게 힘든 일이 없다. 깔아놓은 자산이 없기 때문에 딜소싱을 위해 끊임없이 고객을 찾아야 하는 증권사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직원 입장에서는 영업에 매진할 수밖에 없으니 은행보다 연봉이 높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증권사가 은행처럼 재무제표상에 채권을 떠안고 있으면 안 됩니다. 불가피하게 인수하더라도 곧바로 떨어낼 수 있는 셀 다운 능력이 필요해요" 엡스타인 이사는 이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도 필수라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등 글로벌 IB들도 덩치를 키워 자기자본투자에 주력하지 않았느냐고 기자가 되물었다. 엡스타인 이사는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로 끝난 전략"이라며 "이제 그들도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브로커리지, 어드바이저리, 자산관리 등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 입장에서 굳이 그들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보다는 '숏컷'을 밟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외국계와 국내 증권사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그는 세 번째 화두를 던졌다. 바로 'Usurpation'에 대한 얘기였다. 번역하면 '회사권익의 침해'라는 뜻이다. 그는 "사외이사로서 쓸 만한 IB딜을 소개하는 것은 분명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한국사회가 수용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딜의 주관사로 선정되면 사외이사가 압력을 넣었거나, 그에 대한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은 것 아니냐는 시장의 눈초리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엡스타인 이사는 "만약 이를 나몰라라 한 상태에서 경쟁사가 딜을 따간다면 적어도 미국 시장에서는 'Usurpation'에 대한 페널티가 엄격하게 적용되기 마련"이라며 "국내 회사의 사외이사는 이해상충과 'Usurpation' 사이에서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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