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5월 31일 07: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주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반도체협의회(WSC) 총회'에서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위상이 한껏 빛났다. 올해는 특히 WSC총회 20주년을 맞아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이 이를 기념하는 '서울선언문'을 발표해 의미가 남달랐다.반도체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다짐하는 선언문 낭독 뒤에는 총회에 참석한 6개국(한국·미국·중국·EU·일본·대만) 대표의 발표가 이어졌다.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그렸지만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부분이 있어 이목을 끌었다. 최근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반도체 굴기' 전략에 강도 높은 견제가 쏟아진 것.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수출국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국내업체들도 같은 입장일 수 밖에 없다.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국으로서 생산한 제품의 상당수를 중국에 수출하는 상황이라 중국 정부의 보조금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여기에 거액의 연봉을 주고 국내 고급 인력들을 스카우트까지 하고 있어 이미 내부적으론 견제에 들어간지 오래다. 총회 후 박 사장도 중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중국 반도체업계와 새로운 네트워크를 맺는 작업에도 한창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홍콩에 중화권 IT·반도체 벤처에 투자하는 전문 법인을 설립하며 중국 대표 가전회사인 TCL이 조성한 펀드에 첫 출자했다. TCL그룹은 이 펀드 외에도 여러개의 IT펀드를 운용하며 다양한 중국기업들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 중에는 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그룹'도 있다.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SK하이닉스에 지분 투자와 사업 협력을 제안했던 곳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도 중국 정부가 운용하는 펀드에 1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했다.
언뜻보면 중국을 대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총회에서는 중국을 비판하더니 뒤로는 중국과 손을 잡고 있는 형국이니 말이다. 기술과 인력 유출 위험이 높아 협력 제안도 뿌리쳤던 칭화유니그룹도 한 다리만 건너면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령을 경계하기 위한 기업의 전략적 접근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중국 유수의 기업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현지 정보를 보다 정확하게 얻고 대비할 수 있다. 더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지방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미국업체들처럼 반중(反中) 감정만 드러내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서울선언문 낭독을 기점으로 세계 반도체업계는 지난 20년 간 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힐 전망이다. 중국의 독주를 한 발 앞서 견제하고자 하는 두 기업의 영리한 노력이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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