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꿈꾸던 여대생, 3조 굴리는 매니저로 [취중FUND談] ②박인희 신영자산운용 배당가치운용본부장
박상희 기자공개 2016-07-19 10:32:50
[편집자주]
펀드매니저의 세계는 냉정하다. 수익률이라는 숫자 앞에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펀드 매니저 역시 수익률이 잘 나오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속상한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을 살아간다. 펀드 좀 운용한다는 '고수'들을 만나 펀드 '희노애락'을 들어본다. 인터뷰 대상은 매니저 경력 10년 이상, 동일펀드 운용 경력 3년 이상으로 제한했다.
이 기사는 2016년 07월 14일 15: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박인희 신영자산운용 배당가치운용본부장(사진)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코스피(KOSPI)'가 뭔지도 몰랐던 영문학도였다. 그랬던 그녀가 2000년 당시만 해도 금녀의 세계로 여겨지던 펀드매니저 취업 문을 두드렸고, 덜컥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16년이 지난 현재 운용규모가 3조 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주식형펀드를 책임지는 '대모'가 됐다.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이 될 운명이었던 것일까.◇ "운명처럼 다가온 펀드매니저라는 직업…겁없이 달려들었다"
학창시절 박 본부장은 아나운서를 꿈꿨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배경으로 한 청춘 캠퍼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영향이 컸다.
"당시 문과 계열에서는 신문방송학과와 관광학과가 꽤 인기였어요. 저도 그 쪽을 지원하려고 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취업하려면 영문학과가 더 낫다는 조언을 해주셨죠. 대학 입학 이후에는 혹시 모르니 교원 자격증을 따놓으라는 부모님 말을 듣고 교생실습도 나갔었어요. 그런데 교무실의 갑갑한 분위기가 너무 싫더라고요. 아나운서 시험도 한 번 봤는데, 경쟁률이 몇 천대 일이더라고요. 여기도 힘들다 싶어서 바로 접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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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IT붐이 일던 시절 우연찮게 신생 벤처 캐피탈에 인턴으로 입사한 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주가가 몇 십배가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무턱대고 자산운용사(당시 주은투신운용, 이후 KB자산운용으로 합병)에 취업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셀사이드(sell-side)에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여자가 간혹 들어가긴 했어요. 하지만 바이 사이드(buy-side)는 남성 천하였죠. 면접 보러 들어가자마자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여자가 왜 굳이...' 여기도 합격하긴 글렀구나 생각하고 막 던졌어요. 여자도 펀드 매니저 잘 할 수 있으니 편견을 버리라고요. 관련 자격증이 있냐는 질문엔 'CFA(국제공인재무분석사) 1차 준비 중입니다'라고 외쳤죠. 당돌한 모습이 오히려 먹힌 건지, 그 다음날 바로 합격 전화가 왔어요."
어렵게 입사했지만 유리천장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크려면 직접 운용을 해봐야 하는데 기회가 안오더라고요. 오히려 저보다 연차가 낮은 남자 매니저에게 기회가 가는걸 지켜보기가 힘들더라고요."그러던 차에 친분이 있던 업계 선배인 원주영 신영자산운용 본부장의 조언으로 신영으로의 이직을 결심했다.
당시 이직 면접 상황을 박 본부장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허남권 이사(현재 신영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님이 종목 발굴해서 성공한 게 뭐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하나투어를 점찍어 뒀었는데, 그 때 당시 많이 올랐었거든요. 그 이야길 하니까 바로 오케이를 하시더라고요. 돌이켜보면 당시 하나투어가 신영 스타일의 종목은 아니었는데, 한 회사(KB자산운용)에서 6년 동안 다닌 걸 좋게 본 것 같더라고요."
◇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부사장(CIO)마저 탐내는 매니저
지난 4월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CIO)을 인터뷰 할 당시 업계에 탐나는 매니저가 없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신영자산운용의 박인희 매니저가 탐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가치투자 전문 운용사의 간판 스타인 허 부사장과 이 부사장은 한 살 차이로 호형호제 하는 사이.
당시 이 부사장의 답변은 이랬다. "사석에서 허남권 부사장(CIO)에게 농담으로 박인희 매니저를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능력에 비해 많이 못챙겨 준다면서 연봉 많이 올려줄 수 있으면 데려가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쪽에도 업계 상도덕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데려오진 못하지만 박인희 본부장은 정말 실력 있는 친구에요."
외부 인재 영입을 사절하고, 도제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투자 스타일의 제자를 길러내는 걸로 유명한 이 부사장이 탐낼 만큼 박 본부장이 유능하단 의미로 해석했다. 중앙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이 부사장과 박 본부장은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는 사이이기도 하다.
"이 부사장님께서 잘 챙겨주세요.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한 일이죠. 저에게는 이 부사장님이나 허 부사장님 모두 큰 어른이고, 스승이세요. 특히 허 부사장님은 아직 잘 모르고 덤비는 저를 '한 번 해 봐라'하고 믿어주고 기다려주셨어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아니라고 생각하는 종목을 담아도 일단은 지켜봐주시거든요. 그 인내의 시간이 오늘의 저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맥주 한 잔이면 취한다던 박 본부장은 한 시간에 한 잔 꼴로 총 세 잔의 글라스를 비웠다. 신영밸류고배당펀드는 이제 박인희 본부장으로 통한다. 이 공식은 앞으로도 유효할까.
"둘째 출산하고 회사로 복귀했을 때가 차화정이 막 터지던 때라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면 무조건 오르는 종목이 눈 앞에 있는데, 그 종목을 안 산다고 다들 우리보고 바보라고 했어요. 많은 매니저들이 자문사 차린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갔죠. 저도 돈만 있었으면 그랬을지도 몰라요. 근데 그때 자문사 차린 사람들 중에 여지껏 잘하고 있는 케이스가 드물어요. 집 나가면 고생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거죠. 이 정도면 답이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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