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헤지의 배신, 수익원천→생존위협 [ELS의 비밀] ⑤수익기여도 상당, HSCEI 급락에 손실주범 전락
김기정 기자공개 2016-09-09 10:02:22
[편집자주]
저금리 시대의 투자 대안으로 각광받던 ELS가 골칫덩이 신세로 전락했다. 투자자 뿐 아니라 이를 발행하고 운용하는 증권사의 생사를 가를 정도로 큰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금융당국도 위험 관리 등 다양한 이유로 ELS 시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ELS 시장의 격변 속에서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는지 파헤쳐본다
이 기사는 2016년 09월 07일 08: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주가연계증권(ELS) 운용 부서는 지난 몇 년 간 증권사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곳이었다. ELS를 발행하는 즉시 얻게 되는 판매 수수료에 더해 증권사들은 수익을 더 늘리기 위해 자체 헤지 운용 비중을 크게 늘렸고 시장은 수익 창출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글로벌 IB 육성을 목표로 삼은 정부정책 역시 증권사의 자체 운용 역량을 쌓도록 독려했다.하지만 지난해 홍콩항생지수(HSCEI) 급락은 ELS 자체 헤지 운용 부서를 손실의 주범으로 전락시킨 계기가 됐다. 헤지에 필요한 거래 비용과 옵션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증권사의 근간을 흔들 정도까지 사태가 심각해졌다. 리스크 관리에 취약했던 일부 증권사들은 감내하기 힘든 손실을 봤다.
◇ELS발행하면 절반은 자체 헤지
금융투자업계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 2010년 3월말 29%이었던 증권사 ELS 자체 헤지 비중은 2013년 3월말 39%로 10%포인트 증가했다. 2014년 말에는 44%를 기록한 후 지난해 말까지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ELS의 기초자산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HSCEI를 기준으로 증권사별 자체헤지 비율을 살펴보면 삼성증권이 그 비중이 가장 높다. 한국기업평가가 분석한 결과로 작년말 기준 삼성증권은 HSCEI를 기초로 삼은 ELS의 자체 헤지 비율이 90%를 웃돌았다. 이는 증권사 전체 평균(45%)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현대증권과 NH투자증권 역시 60% 수준으로 높은 편에 속했고, 신한금융투자는 이례적으로 그 비중이 10%에 한참 못 미쳤다.
HSCEI는 주요국 주가지수 중 ELS의 기초자산으로 가장 활용이 높은 지수 중 하나다. 지난해 금융감독당국은 HSCEI에 대한 쏠림현상이 지나치다고 판단, 그 비중을 제한하는 총량 규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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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증권사별 자체 헤지 비중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급락 이후에도 HSCEI가 크게 반등하지 못하자 이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의 조기상환이 줄줄이 연기됐기 때문이다. 자체헤지 규모가 크게 줄어들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자체 헤지 비중을 늘린 건 과거 정부 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 지난 2003년 국내 금융회사를 글로벌 금융회사로 육성하겠다며 발표한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통해 글로벌 IB와 경쟁할 수 있는 영업 전략을 독려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백투백 헤지를 맡은 일부 글로벌 IB들이 ELS 운용 자산 상환에 문제를 겪었던 것도 증권사들이 자체헤지 비율을 높인 계기가 됐다.
자체 헤지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증권사가 취하는 구체적인 헤지 포지션, 운용 능력 및 전략 등에 따라 실제 손익 규모와 손익 변동성은 변동된다. 운용 과정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은 한화투자증권은 장밋빛 전망에 기반해 무리하게 운용 리스크를 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수 기초자산에 대한 지나친 쏠림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지나친 과욕이 더해진 결과인 셈이다.
◇변동성 커지자 헤지 손실 눈덩이…거래비용·옵션손실 급증
자체 헤지 비중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던 증권사들이 악몽을 겪게된 건 지난해 HSCEI 급락 때였다. 지수 가격 하락과 더불어 변동성이 커지자 ELS 자체 헤지 손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커졌다. ELS로 인해 증권사 실적 악화 뿐 아니라 금융시장 전반의 건전성을 해치는 수준까지 이르기도 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증권사들이 ELS 발행잔액 1조 원당 평균 150억~200억 원 가량의 평가손실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장세로 헤지거래에 필요한 거래비용과 옵션 거래에서의 손실 등이 급격히 증가했다.
발행사들은 기초자산의 가격변동에 따른 손실위험을 회피하고 상환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기초자산을 대상으로 델타헤지(Delta Hedge)를 한다. 델타는 기초자산 가격 변동에 대한 옵션가격의 민감도를 뜻한다. 발행사들은 그 델타값만큼의 기초자산을 현물 혹은 선물로 확보해야 한다. 델타는 기초자산 가격이나 변동성에 따라 만기까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발행사들은 기초자산에 대한 매매를 연속적으로(동태적 델타헤지)한다.
국내 ELS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텝다운(Step-down)형은 기초지수가 떨어질수록 델타가 커지는 구조다. 즉,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할수록 해당 기초자산의 선물을 더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초자산 가격이 녹인(Knock-in) 부근까지 떨어지면 델타값은 극단적으로 커진다. 기초 지수의 가격이 떨어지면 자체헤지 리스크가 더욱 더 커지는 셈이다.
국내 ELS의 기초자산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HSCEI가 급락하자 HSCEI선물을 확보하기 위한 이자비용과 조달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환차손 또한 대폭 커졌다. 헤지를 위한 선물계약은 달러로 이뤄지는데, 지난 8월 원화값이 상승하고 FX변동성이 확대되자 손실을 키웠다.
옵션 거래에서 발생하는 손실 또한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요 손실 중 하나다. 델타헤지는 애초 변동성이 어느 정도될 것이라고 정해 놓은 수준에 따라 수행된다. 실제 변동성이 예상과 빗나갈 경우를 대비해 발행사들은 변동성 헤지를 위한 옵션을 거래한다. HSCEI 급락처럼 발행사가 베팅해놓은 옵션 포지션과 대비되는 장세가 이어지면 손실액은 급격히 불어나는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의 운용 경쟁력이 있으면 ELS 자체헤지는 큰 수익을 안겨주지만 반대인 경우 재앙으로 올 수 있다"며 "수익에 대한 욕심으로 리스크 관리가 안되는 곳에서조차 과도하게 운용하면서 결국 부메랑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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