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2월 06일 07: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중국의 명의 '편작 3형제' 이야기를 아십니까?"얼마 전에 만난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 고위관계자는 대뜸 이 말을 꺼냈다. 중국의 명의 '편작'에겐 의술에 능한 두 형이 있었다. 세간에선 편작이 가장 명의로 추앙받았으나 정작 그는 두 형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의원이라고 말했다. 큰 형은 병의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조치하고 둘째 형은 병세가 미약하게 드러날 때 치료하지만 자신은 병이 커졌을 때 뒤늦게 알아차리고 고치는 바람에 더 많이 알려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편작 3형제 일화를 예보의 역할 재정립에 비유했다. 그동안 편작처럼 금융회사의 병이 심각하게 드러난 후에야 구제에 나섰다면 이제부터는 사전적으로 리스크를 점검하고 평가해 관리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예보는 금융회사들로부터 받은 예금보험료(예보료)를 기반으로 금융사가 지급불능상태에 이르렀을 때 원리금(5000만 원 한도)을 환불해 주는 공기업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보호하고 있는 '부보예금'이 1848조 원에 달한다. 역할이 이런지라 항상 부실사태가 커진 후 뒤처리를 위해 나서는 기관으로 많이 알려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에 발생한 저축은행 대량 부실사태다.
당시 30여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자 예보료만으로 원리금 보상이 힘들었던 예보는 자금확보를 위해 막대한 예보채를 발행했다. 이는 공기업의 부채비율 악화와 공적자금 투입으로 이어졌다. 결국 국민의 혈세가 소요된 셈이다.
저축은행 사태를 직접 겪었던 예보 경영진, 실무진들을 만나보며 하나 같이 '사전적 리스크관리'의 중요성을 이 때 절감했다고 한다. 부실저축은행 정리업무를 담당했던 예보 한 직원은 "저축은행의 이익은 대주주가 향유했지만 부실이 나자 손해는 국민의 혈세로 부담한 꼴"이라며 "이익은 개인이 취하고 손실은 공유하는 구조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5년 5월 취임한 곽범국 사장이 사전적 리스크관리를 강조하면서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구체화됐다. 곽 사장은 창립기념식 등 공식행사 자리에 설 때마다 "예보가 '사후적 부실정리기관'이라는 좁은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부실 조기인식과 사전적 리스크 관리를 위한 전문적인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조직개편을 통해 위험관리·연구 인력을 증원하고 보험리스크관리실을 신설한 것도 그 일환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시장환경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상당수 금융사들은 리스크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감독당국도 마찬가지다. 때마침 예보가 사전적 리스크관리 기관으로 포지션을 재정립했다. IMF 외환위기부터 보증보험 구조조정,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이르기까지 금융안전망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예보가 리스크관리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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