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인 '소난골', 또 다시 막힌 출구전략 [정성립號 대우조선 명암]⑥경영진 교체 '협상 원점', 용선처 선정 등 과제 산적
심희진 기자공개 2018-03-23 08:16:39
[편집자주]
정성립 사장이 대우조선해양의 수장을 맡은 지 3년여가 흘렀다. 벼랑 끝 위기 속에서 40년 내공의 베테랑은 다급히 호출됐다. 9년만의 복귀다. 생존의 기로에 섰던 대우조선해양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생존의 기쁨은 크지 않다. '대마불사의 끝판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부담이다. 구원투수로 나선 정 사장의 공과와 대우조선해양의 현주소 들여다 본다.
이 기사는 2018년 03월 20일 14: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대우조선해양에게 소난골(Sonangol) 프로젝트는 아픈 손가락이다. 대우조선해양은 2013년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인 소난골로부터 오랜 기간 이어온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1조원이 넘는 드릴십 수주를 따냈다. 하지만 국가 채무를 떠안게 된 소난골이 유가 하락 등을 이유로 수년째 드릴십 인도 일정을 늦추면서 대우조선해양에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지난해 3월 지지부진했던 드릴십 운영업체 및 용선처 선정 작업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소난골 프로젝트가 마침내 해결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앙골라 정권 교체로 소난골 경영진이 새롭게 바뀌면서 모든 협상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상태다. 대우조선해양은 소난골 프로젝트가 경영 정상화의 최대 변수인 만큼 인도 지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소난골, 20년간 140억달러 발주…드릴십 2기에 신뢰 깨져
대우조선해양과 소난골의 인연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소난골은 원유 시추에 쓰일 해양플랜트를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했다. 이후 약 20년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3척, 원유운반선 10척, 해양플랜트 17기 등 총 140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발주하며 대우조선해양의 주요 고객사로 자리잡았다.
양사의 파트너십은 합작 투자로 이어졌다. 2010년 대우조선해양은 소난골과 함께 앙골라 파이날(Paenal) 조선소를 인수했다. 주요 산유국들이 모여있는 서아프리카에 해양구조물 전문 조선소를 운영해 수익 증대를 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소난골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은 대우조선해양은 앙골라 현지에서 해양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따냈다.
두터웠던 신뢰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앞서 2013년 대우조선해양은 소난골로부터 드릴십 2기를 수주했다. 총 거래금액 12억4000만달러 중 20%에 해당하는 2억5000만달러를 계약 당시 선수금으로 받았다. 나머지 9억9000만달러는 헤비테일(heavy-tail) 방식으로 수령키로 합의했다. 헤비테일이란 계약이 아닌 인도 시점에 총 거래대금의 70~80%를 지급받는 방식을 말한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6월과 7월에 드릴십 2기를 각각 인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진 저유가로 앙골라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소난골은 국가 채무의 대부분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이를 핑계로 드릴십 인도를 무기한 거부하기 시작했다.
조선업 불황으로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진 대우조선해양은 건조대금 수령을 위해 2016년 9월 특수목적회사(SPV) 설립 카드를 꺼냈다. 드릴십 잔금 9억9000만달러 중 80%는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20%는 SPV 주식을 취득한 뒤 배당 등을 통해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9월로 예정돼있던 드릴십 인도가 최종 불발되면서 소난골과 함께 세운 SPV도 무용지물됐다. 대우조선해양이 미국 채무조정 전문회사인 밀스타인(Millstein)의 힘을 빌려 막판 협상을 벌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소난골 경영진 교체, 인도 협상 '제자리걸음'
소난골 드릴십은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해양설비 중 거래금액이 가장 크다. 인도 예정일을 넘긴 유일한 구조물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계약을 끝맺어야 하는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초 소난골에 추가 회유카드를 제시했다. 소난골이 원유 판매권 등을 담보로 내놓으면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이 자금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데다 소난골이 드릴십 1기당 1억달러씩 깎아달라는 무리한 조건을 내걸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대우조선해양이 드릴십 인도에 사활을 걸었던 건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2017년 4월 4400억원, 7월 3000억원, 11월 2000억원 등 한해에만 9400억원의 회사채를 갚아야 했다. 당시 약 5000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었지만 이 중 3000억원이 방위산업진흥회에 담보로 잡혀있던 상태라 실제 사용할 수 있었던 자금은 2000억원에 불과했다. 1차 회사채 만기 전 1조원가량의 인도대금이 유입되지 않으면서 대우조선해양은 법정관리 위기에 몰렸다.
채권단의 채무재조정 및 3조원의 자금수혈로 다시 한 번 회생 기회를 잡은 대우조선해양은 소난골 설득 작업에 속도를 냈다. 끈질긴 협상 끝에 소난골은 지난해 드릴십 운영업체 및 용선처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미국 엑슨모빌(Exxon Mobil), 셰브런(Chevron) 등 5곳의 정유업체가 드릴십 운영업체 후보로 거론됐다. 용선처로는 이탈리아 석유기업인 에니(Eni S.p.A.)가 물망에 올랐다. 상황이 진전되자 이를 근거로 시장에선 9월께 드릴십 인도가 완료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끝이 보일 것만 같던 소난골 프로젝트는 올초 소난골 수장이 교체되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지난해 8월 앙골라 독재정권이 38년만에 막을 내리면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그 영향으로 국영회사인 소난골의 경영진도 대거 교체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소난골 논의를 재개하기 위해 최근 영업부서 실무진을 앙골라에 파견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연내 드릴십 인도를 목표로 소난골과 꾸준히 협상을 이어갈 방침이다. 한때 배럴당 4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유가가 최근 60~70달러로 반등하면서 드릴십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소난골은 드릴십 운영업체 선정에 앞서 후보군을 추리는 작업부터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새로 바뀐 소난골의 경영진이 그간의 협상 내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며 "영업부서 임원들이 앙골라에 가서 소난골 경영진과 첫 상견례를 잘 마친 만큼 빠른 시일 내 드릴십을 인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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