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서 도전받는 관료들 [실험 시작된 금융감독체계]①'관료 vs 민간' 기존 인사관행 깬 구도…예견된 갈등 관측
안경주 기자공개 2018-12-26 07:47:00
[편집자주]
한동안 잠잠하던 금융감독체계 개편 이슈가 또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난 정부에서 '혼연일체'를 강조하며 애써 감추려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오랜 갈등이 결국 선을 넘은 탓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면밀히 살펴보면 민간·시민단체 출신의 인사를 금감원장에 앉히면서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금감원 체제 10년이 흐른 지금,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과연 이뤄질까.
이 기사는 2018년 12월 21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갈등의 발단은 금감원이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 대해 금융위가 대폭 감축을 요구한 것이다. 금융위가 올해보다 2% 삭감된 금감원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두 기관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모양새다.금융위와 금감원 간 갈등이 처음은 아니다. 키코(KIKO) 재조사, 케이뱅크 의혹,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여러 사안에서 다른 태도를 보이며 올해에만 수차례 엇박자를 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두 기관의 갈등을 끝내기 위해서 금융감독체계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단순히 그동안 두 기관의 해묵은 갈등이 표면화 됐다고만 보기 어렵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변화 속에서 나오기 시작한 갈등인 탓이다. 그동안 관료 출신 인사가 임명된 금감원장 자리에 민간·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앉으면서 불협화음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
◇서로 다른 출신 성분, 갈등 예고
현행법상 금융위는 금감원의 상위기관으로 '금감원의 업무·운영·관리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한다. 금융위는 금융산업의 제도와 정책 전반을 총괄하고, 금감원은 금융기관의 검사와 감독을 맡는다. 즉,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은 금융위를 통해 이뤄진다. 금융감독규정 개정권도 금감원장이 아닌 금융위가 갖고 있다. 반면 금융시장과 금융회사에 대한 모든 정보는 집행기구인 금감원에 있다.
권한과 정보가 각기 다른 기관에 있는 이 구조는 태생적으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금감원을 금융위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위는 (금감원을) 평소 하청업체 정도로만 생각한다"며 "수직적 구조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금융위와 금감원이 늘 삐걱대지는 않았다. 사실 갈등이 불거진 것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수직적 구조임에도 마찰음 없이 유지, 작동했다. 한솥밥 먹던 관료 출신이 금감원장 자리에 앉은 탓이다. 실제로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분리된 2008년부터 전 정부까지 금감원장을 지낸 인물은 김종창·권혁세·최수현·진웅섭 등이다. 이들은 모두 행정고시 출신으로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관행은 문재인 정부에서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하나금융지주 사장 출신의 최흥식,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 김기식, 경제학자 윤석헌 교수를 잇따라 금감원장에 임명했다. 이들은 금융감독체계 개편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금융위보다 금감원 역할과 권한 강화를 주문해 왔다.
최흥식 전 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은 분리해 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기식 전 원장은 지난 4월 취임식에서 "금융 정책과 감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큰 방향에서 같이 가야 하지만, 정책기관과 감독기관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며 "금융감독의 원칙이 정치적, 정책적 고려에 의해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금융위의 하부 기관이 아닌 독립적 감독기구로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이다.
학자 시절에 금융위가 엑셀(산업정책)과 브레이크(감독기능)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던 윤석헌 원장도 지난 5월 취임식에서 "금융 감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감원 전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금감원장 자리를 놓고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밝혔다"며 "관료출신 금감원장이 나오지 않으면서 금융위 입장에선 불편함이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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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소리 내기 시작한 금감원
'관료 vs 민간'. 최근 금융위와 금감원 간 갈등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롭게 임명된 금감원장들이 정책과 감독의 조화 보다 분리를 강조했던 만큼 금융감독과 관련해서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쳤다.
특히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키코, 인터넷전문은행 등 금융현안과 관련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금감원을 지휘·통제하는 금융위는 당황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대표적이다. 금감원이 1년 넘게 진행해 발표한 감리 결과에 대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올 7월 재감리 명령을 내리면서 금감원은 체면을 구겼다. 이후 이른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으로 내부문서가 발견되면서 결과적으로 금융위는 금감원에 체면을 구겼다.
이 밖에도 △노동이사제 도입 △키코 사건 재조사 △대출금리 조작 의혹 △케이뱅크 특혜 의혹 등 핵심 안건에 대해서도 수시로 이견을 노출해왔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주장했던 윤 원장이 금감원 수장으로 온 이상 내부에서는 실질적 감독 권한을 되찾기 위한 시도가 잇따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도 "정책과 감독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금융현실에서 둘이 겹쳐 있는 경우가 많다"며 "지향하는 방향이 달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상위기관인 금융위의 업무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 7월 금융위와 충분한 협의 없이 '금융감독 혁신과제'를 발표한 탓이다. 이를 두고 금융위 내부에선 금감원이 감독 업무를 넘어 정책수립까지 하려 한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정책과 감독기능 분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며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에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앞으로 (문 대통령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 최종적으로 지켜봐야 하지만 무게추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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