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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대기업 지원만 벌써 4.7조…신성장 발굴 '힘부친다' 두산·아시아나·대한항공 등 지원 불가피...코로나 사태로 산은 역할 변화 쉽지 않을듯

김장환 기자공개 2020-05-01 13:23:20

이 기사는 2020년 04월 29일 10: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업은행이 코로나19 사태로 위기가 확산된 대기업 살리기에 힘이 부친 모양새다. 수출입은행과 함께 공개적으로 약속한 대기업 회생 자금 지원 규모만 올 들어 4조7000억원을 넘어섰다. 기업 구조조정보다 신성장 기업 지원에 주력하는 역할 변화를 꿈꿨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기업 위기는 두산중공업이 시발점이 됐다. 지난달 유동성 위기를 갑작스럽게 알리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지원을 요청했다. 1조원대 '크레딧라인'을 개설해주기로 했고, 8000억원대 추가 자금 지원도 검토 중이다. 그 뒤를 항공사들이 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을 사가기로 했던 HDC 현대산업개발이 '딜 포기'를 거론하자 1조7000억원대 정상화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모기업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으로 들끓었던 대한항공에도 1조2000억원대 자금 지원을 고려 중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현실은 2017년 '대우조선해양 사태' 당시로 돌아간 듯하다. 2015년 10월 일명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4조2000억원대 자금 지원을 결정하며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고 외쳤지만, 이후 2017년까지 투입키로 한 공적자금이 7조원을 넘어섰다. 그나마 당시는 큰 기업 한 곳을 중심으로 한 지원이었다면 이번엔 다수다. 추가적으로 투입해야 할 자금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가 더욱 어렵다.

2017년 말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수그러들 무렵 산업은행에 부임한 이동걸 회장은 당시 수출입은행을 비롯해 시중은행들과 함께 끌어왔던 다양한 대기업 구조조정 이슈들을 산업은행 중심으로 끌어와 주도적으로 해결했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마무리를 장식했고 이후 금호그룹 구조조정을 공격적으로 이끌었다. 박삼구 회장과 나머지 채권단의 입김을 완전히 차단해 금호타이어 매각을 완료했고, 금호아시아나 구조조정 역시 성공적으로 이룬 것도 이 회장 공이 컸다.

이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는 산업은행에 이전과 전혀 다른 옷을 입히고자 했다. 신성장산업 지원에 초점을 둔, 벤처기업 육성에 주력할 수 있는 기관으로서의 역할 변모를 노렸다.

비금융 계열사 구조조정을 전담할 KDB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고 기업구조조정본부 규모 축소, 스타트업 지원 신설 등을 그 일환에서 단행했다. 이 회장 부임 후 2년여 기간 동안 산업은행은 대기업 구조조정보다는 성장기업을 키우는데 보다 주력하는 은행으로 차츰 바뀌는 듯했다.

그러나 올들어 두산중공업,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수면 아래서 부표를 불리고 있는 쌍용차와 한국GM을 비롯해 코로나19 사태로 부실화가 심화된 대기업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질병 사태로 인해 이 회장과 산업은행도 이상만 바라보기가 어렵게 됐다. 정부도 산업은행이 소방수 역할을 해주길 원한다. 산업은행은 올 한해 동안 이들 기업의 구조조정 역할 외에 다른 일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인다.


문제는 산업은행 자체적으로 이번 대기업 구조조정 자금 지원을 감당할 여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일단 자본적정성 약화 우려가 있다. 산업은행의 2019년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이 14.05%다. 이 기간 총자본은 25조8028억원, 위험가중자산(RWA) 249조원 가량이다. 당국 규제 기준인 BIS비율 10.05%를 고려하면 70조원 가량 지원 여유는 있다.

그러나 다른 산업 분야에도 투입해야 할 자금과 일상적인 운영자금까지 고려하면 자본금을 미리 확충해야 한다. 정부가 산업은행에 요구하는 민생과 증권·채권 시장 안정화, 중소기업 살리기 자금까지 고려하면 60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대기업 살리기 자금은 별도로 책정해야 한다. 상당수가 RWA로 유입될 수 있는 자금인 만큼 대기업 살리기 자금 지원은 곧 BIS비율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보통주자본(CET1)비율과 기본자본(Tier1)비율도 각각 12%대에 그쳐 여유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더 큰 부담은 시장에 지원해야 할 자금 규모가 만만찮은 수준인데 유동성에 여유가 많지 않다는 점이 거론된다. 산업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은행계정 현금은 6조5922억원 정도다. 올해 초 마련한 자금까지 고려해도 원화 유동성이 7조원에 미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기에 수익성 흐름도 좋지 않다. 지난해 순이익은 4457억원으로 전년 보다 2조원 넘게 줄었다. 2018년 대우조선해양 손상차손환입에 따른 '기저효과' 영향도 있었지만 과거보다는 수익이 떨어진 추세다.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이를 기업 살리기에 투입하는 게 불가피해 보이는데 논의 중인 지원 규모는 2조~3조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성에 차는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 회장이 과거부터 보여준 소신대로면 현 상황의 기업 구조조정과는 다른 방향이 보다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 차원에서 추구하고 있는 '기업 살리기'에 초점을 맞춰 당분간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오는 9월 임기를 만료로 산업은행을 떠나는 순간까지 이 회장이 꿈꿨던 신성장기업 육성 기관으로의 변화 꿈을 이루기는 결국 어렵게 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업 살리기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혁신금융을 지원하는 마중물 역할로 산업은행을 변모시키려는 회장의 꿈이 사실상 힘들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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