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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소유 패러다임의 전환, 종업원지주사주식 보유 통한 이익공유와 경영참가, 회사·노동자 '운명공동체'

고진영 기자공개 2020-06-15 08:26:08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11일 13:0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기업가라면 누구나 해봤을 법한 고민이다. 국내 1400여개 매장을 보유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강연에서 그런 방법은 없다고 결론내렸다. ‘내 직장이니 스스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직원이 진짜 주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KSS해운의 창업주 박종규 고문은 ‘직원이 주인인 회사’라는 저서에서 말하기를 “경영자는 임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고 창의력을 발휘하라고 닦달한다. 하지만 주인대접을 해야 주인의식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종업원이 회사의 주인으로 참여하는 종업원지주제는 효율성 측면에서 이상적이며 기업자본주의의 발전된 형태다. 소유에 책임감이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KSS해운은 1969년 설립 당시부터 사주조합을 만들었고 1995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했다. 2014년 국내 최초로 이익공유제를 들여와 이듬해 이 제도를 사규에 포함했다. 이때부터 주주와 회사, 임직원들은 모두 운명공동체였다. 이익이 늘어나면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배당금이 많아지고 반대로 이익이 줄면 직원들의 수입이 줄어든다.

현재 박 고문이 지분 17.63%를 쥔 최대주주, 우리사주조합이 11.75%를 보유한 2대주주로 있다. 직원이 지배력을 확보하기에는 모자란 지분율이지만 박 고문은 지속적으로 지분율을 낮추는 반면 우리사주조합은 꾸준히 매입 중이다.

지도에 없던 길을 선택한 성과는 어땠을까. KSS해운은 10년 전인 2009년과 비교해 매출이 지난해까지 약 2.2배, 영업이익은 4.8배 뛰었다. 해운업의 장기 불황을 비껴간 실적이다.


◇국내 종업원지주제, 논의의 시작과 역사

1948년 7월 17일 만들어진 제헌헌법 제18조는 전세계 헌법 어디에도 쓰여진 적이 없던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규정하고 있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서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노동자는 기업이 맺은 열매를 공유할 당연한 권리를 가진다는 의미다. 외국헌법을 그대로 옮겨오다시피한 다른 조항들과 달리 이 조항은 날선 논박 끝에 겨우 만들어졌다.

대단히 급진적인 사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익균점제를 강력히 주장했던 전진한 의원은 대한민국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냈으며 이른바 ‘반공 우익인사’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다만 그는 노력을 출자했다는 의미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와 다름없고 이윤을 나누는 것 또한 자연스런 일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 조항은 빛을 보지 못하고 곧 지워졌다.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익을 나눠야 하는데 그 법률이 만들어지지 못했고 1962년 헌법개정으로 이익균점권 조항 자체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익균점제와 같은 맥락에서 제시됐던 것이 경영참가권이다. 이익균점제와 달리 반대에 부딪혀 애초부터 헌법에 포함되지 못했다. 경영참가는 이익을 나누는 성과참가와 소유를 나누는 자본참가를 포괄하며 이 가운데 근로자의 자본참가는 종업원지주제로 대표된다. 종업원지주제는 각국에 따라 전종업원주식소유제도, 종업원주식구입제도, 승인이익분배제도 등 다양한 이름과 방식을 띠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우리사주제도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유한양행이 최초로 도입했다. 1958년 공로주 배분과 자사주 취득을 허용했고 1973년 완성된 형태의 우리사주제를 이뤄냈다. 1974년에는 직원 977명이 회사 주식을 소유한 사원이자 주주가 됐다. 같은해 ‘종업원지주제도 확대실시방안’이 발표되면서 국내 우리사주조합 결성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대주주인 유한재단(15.61%)과 유한학원(7.65%) 등 공익법인 약 23%,국민연금공단 12.70% 등으로 지분이 분포해 공익적 성격이 강한 독특한 지배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노동자가 경영하는 회사, 시도와 좌절

종업원지주제는 좁게 봤을 때 종업원 소유기업(Employee-owned company)의 의미로 쓰인다. 직원들이 최대주주로서 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경우다. 영국 툴리스러쎌 (Tullis Russell)의 전 대표이자 이 회사의 종업원지주사 전환을 이끈 데이비드 어달(David Erdal)은 종업원지주제의 장점이 현실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회사가 실질적으로 노동자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상장사 중에서는 한국종합기술이 유일한 케이스다. 2017년 한진중공업그룹이 한국종합기술을 매물로 내놓자 종업원들이 의기투합해 한국종합기술홀딩스를 세우고 인수자로 나섰다. 총 850명이 출자자로 참여해 각자 5000만원씩을 대출받았다. 나머지 부족 자금은 금융권에서 끌어와 약 500억원의 인수자금을 마련했다. 현재 한국종합기술홀딩스가 52.96%의 지분을 소유해 견고한 지배력을 유지 중이다.

인수 이후 급격한 지배구조 변화에 따른 어려움도 있었다. 당초 인천항만공사 사장을 지냈던 김춘선 전 대표를 CEO로 선임했다가 1년만에 바꾸는 등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초기 혼란은 이제 대부분 안정화에 접어든 상태다. 지금의 CEO는 내부 출신인 이상민 사장이다.


이밖에도 2007년 쌍용건설 임직원들이 종업원지주사로 전환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들은 당시 채권단이 매각에 나섰던 주식 가운데 24.72%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지고 있었다. 2003년 유상증자 과정에서 직원들이 퇴직금을 털어 주식을 사들이자 김석준 회장이 오너로서 보유하고 있던 우선매수청구권을 직원들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쌍용건설 우리사주조합은 이 지분과 조합 보유 지분 등을 합쳐 총 50.76%의 지분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종업원지주사 전환을 노렸지만 매각이 무산돼 실패로 돌아갔다.

2015년에는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노동조합이 종업원지주사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지분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금여력 부족 등 현실적 여건을 넘지 못하고 좌절됐다.

◇종업원지주사 도입의 장단(長短)

미국 EOF(Employee Ownership Foundation)는 “종업원지주사의 직원들은 더 효율적으로 일함으로써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높인다”며 “회사의 성패와 운명을 같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역시 종업원지주사들은 경제 위기를 맞았을 때 더 맷집이 세고 회복력이 강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와 별개로 대기업집단 대부분이 재벌 세습 형태인 국내에서 종업원지주사는 대안적 소유구조의 한 가지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오너 리더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은 그만큼 의사결정이 신속하고 대담하지만 뒤따르는 리스크도 무겁다. 경영 실패의 결과가 구조조정, 노동자 해고로 귀결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봤을 때 무시할 수 없는 손해다.

한국종합기술 사외이사로 있는 송호연 ESOP컨설팅 대표는 이에 대해 “과거처럼 경제성장 속도가 가파를 때는 오너 체제에서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할 수 있지만 회사가 커지면 커질 수록 위험부담도 자라난다”며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질 경우 속도는 느리지만 이는 위험요소들을 없애려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종업원지주제가 모든 기업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종업원지주사 전환을 위해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이 추후 장기적 사업투자를 제한할 만큼 부담되는 경우라면 이는 현명치 못한 선택이다.

또한 종업원지주사는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으로부터 보유 주식을 재매입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안정적 현금 유동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신중한 계획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식 재매입 등에 소요되는 비용이 다른 필요 비용과 충돌해 회사의 발전을 해칠 수 있다.

◇외국 종업원지주제 모습은

미국 NCEO(전미사원주주센터)에 따르면 2019년 종업원 수 기준으로 상위 100개의 미국 종업원지주사가 모두 61만명을 고용 중이다. 종업원 지분이 50% 이상인 회사들만 포함했다.

미국에서 종업원지주제를 택한 기업들의 대부분은 ESOP(Employee Stock Ownership Plan) 방식을 취하고 있다. 기업과 종업원이 같이 출연해 기금을 조성한 뒤 주식을 사고 이 투자에서 나오는 이득을 분배하는 형태다. 물론 회사를 떠나는 직원은 보유했던 주식을 팔아야 한다.

이들 중 가장 거대한 종업원지주사는 퍼블릭스 수퍼마켓(Publix Super Markets)이다. 1242개의 점포를 운영하면서 20만명의 직원을 책임지고 있다. 모든 직원들은 입사한지 12개월이 지나면 직책과 상관없이 주식을 부여받는다. 지난해 381억달러의 소매판매를 올렸으며 30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미국 비상장사 가운데 8번째로 큰 규모다. 경제지 포춘(Fortune)은 2020년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00개를 선정하면서 퍼블릭스를 38위에 올리기도 했다.

영국의 경우 국민 백화점기업이라 할 정도로 사랑받는 ‘존 루이스 파트너십(John Lewis Partnership PLC)’이 최대 종업원지주사다. 외부 주주는 없으며 회사의 모든 주식을 노동자 수익 신탁(employee benefit trust)에서 관리한다. 전체 직원이 공동사업자(partner)인 셈이다.

모든 종업원은 직원 총회를 통해 대표되며 이 총회에서 5명의 평직원(non-executive) 이사 임명권과 회장 해임권을 갖는다. 전체 15명인 회사 이사회 중 평직원 이사 5명, 종업원 대표 카운슬러 1명 등 종업원 자리가 6석이나 된다.
존 스페단 루이스(John Spedan Lewis)

이 백화점은 영국에서 150년 동안이나 운영돼 왔다. 설립자의 아들 존 스페단 루이스는 그와 그의 가족이 각각 경영을 통해 가져가는 돈이 모든 종업원의 월급을 합친 것과 동일한 금액임을 깨달았다. 개혁안을 궁리하던 루이스는 결국 아버지 사후인 1950년 자신의 모든 주식을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노동자 신탁으로 이전하면서 공동 소유 사업체를 만들었다.

그는 이를 '더 나은 기업 경영'의 아이디어에 기반한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그 효과는 파트너십에서 나온다. 존 루이스 파트너십의 사규는 아래처럼 명시하고 있다. ‘회사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직원들의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고용을 통한 행복 추구다. 공동사업자(partner)들은 사업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물 뿐 아니라 회사 소유에 대한 책임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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