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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바이오 흥망사]한화 바이오시밀러, '잠수함 특허'에 무너지다①머크, 류머티즘 치료제 L/O 1년만에 해지…주사제 용량 등 마케팅 전략도 한계

민경문 기자공개 2020-08-10 08:05:20

[편집자주]

바이오 산업은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이다. 막대한 비용과 오랜 연구기간이 불확실성을 높인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럼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팜처럼 성공사례가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 바이오 사업을 중단했거나 실패를 경험한 대기업으로선 시샘의 대상이다. 뒤늦게나마 사업을 재개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더벨은 국내 대기업 바이오의 현주소와 그들의 도전사를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20년 08월 05일 07: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1년 7월 1일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김승연 회장이 바이오시밀러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한화케미칼 담당 임직원에 20억원을 전달했다. 한화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포상금이었다. 폴 콜먼 최고운영책임자(COO), 안용호 부장(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 등 핵심 인력 4명은 각각 1억원을 받았다.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인 ‘엔브렐(Enbrel)’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미국 머크(Merck)와 맺은 라이선스아웃(L/O) 계약은 거래 규모만 7800억원에 달했다.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인 ‘HD203’ 제품의 공동개발 및 상업화가 핵심이었다. 엔브렐은 미국 화이자의 류머티즘 항체의약품으로 세계적으로 연간 6조원어치가 팔리는 블록버스터 제품이다. 김 회장은 2011년 신년사에서도 10년 먹거리로서의 바이오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1년여만인 2012년 말 머크 측에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임상3상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회사 측이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서 투자자 혼란이 가중됐다. 류머티즘 관절염 시장이 워낙 유망해 머크가 사업 방향을 변경할 가능성은 낮았다. HD203의 경우 '바이오베터'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큼 기술력 면에서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상황이었다.

화이자의 류머티즘 치료제 '엔브렐'

원인은 ‘잠수함특허(Submarine Patent)’에 있었다. 엔브렐의 경우 2012년 미국 특허 만료가 예상됐던 만큼 국내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의 주요 개발 타깃이었다. 머크가 한국과 터키 외 지역에 대해 한화케미칼이 개발중인 엔브렐 바이오시밀러의 영업권을 획득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말 미국 특허청에서 새로운 엔브렐 관련 특허 등록이 결정됐다. 원개발사인 암젠의 잠수함특허였다.

제3자가 해당 특허 존재를 모르고 사용할 경우 출원인이 비로소 등록을 마친 뒤 권리 행사에 나서는 형태였다. 미국의 계속출원(신청)제도를 악용한 전략이기도 했다. 바이오 신약의 이 같은 특허 방패를 뚫지 못하면 바이오시밀러 판매는 현실화되기 어렵다. 머크로선 한화케미칼과의 계약해지가 불가피했다. 암젠 또한 휴미라의 바이오밀러 ‘암제비타’를 만들어놓고 특허 무효소송에서 패소하는 바람에 시판 계획을 연기해야 했다.

잠수함 특허의 경우 사전에 이를 알기가 쉽지 않다. 한화케미칼 측도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개발 과정에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적지 않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잠수함 특허나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을 통해 특허를 장기간 보유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시장 관계자는 “엔브렐 특허와 관련해 미국 법원이 바이오시밀러로 활용하려는 머크보다 원개발사인 암젠과 판매사인 화이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마케팅 측면의 한계도 분명했다. 오리지널인 엔브렐 주력 용량은 50mg이다. 주사제 형태인 엔브렐은 2012년부터 50mg 용량이 추가돼 주사횟수와 환자 부담 비용이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한화케미칼이 개발한 HD203은 용량이 25mg 한가지뿐이어서 엔브렐과의 정확한 비교 임상시험을 수행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화케미칼 출신의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당시 회사 내에서 주사 용량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다"며 "R&D에만 주력했을 뿐 제대로 된 마케팅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화케미칼 출신 인사는 "엔브렐이 아닌 레미케이드나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며 "엔브렐 바이오시밀러를 먼저 연구했던 LG생명과학 출신 인사들이 한화케미칼에 상당수 포진해 있었다는 점 등이 의사결정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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