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2월 16일 08: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바이오 투자에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신라젠'이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에이치엘비, 헬릭스미스 등과 더불어 바이오 투자 붐의 중심에 섰었고 글로벌 임상 3상에 도전한 바이오 톱스타였다. 한때 몸값이 10조원까지 치솟으며 코스닥 시가총액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다만 바이오 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든 원흉으로도 꼽힌다. 2019년 핵심 파이프라인 펙사벡의 간암 글로벌 임상 3상이 조기 종료됐고 설상가상으로 전직 경영진이 횡령·배임 혐의에 휩싸였다. 작년 5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했고 거래가 정지됐다. 10조원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86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그런 신라젠이 NRDO(Non Research Development Only)의 변신을 선언했다. 작년 11월 1년 간의 개선기간을 부여받은 이후 결단이다. NRDO는 동물실험과 약물의 유효성을 소수의 임상 지원자를 통해 확인하는 초기 임상(전임상~1상) 결과를 토대로 라이선스 아웃 등의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하는 사업모델이다.
NRDO로의 전환은 그간 신라젠에 집중돼 온 숱한 조명의 가장자리에 선다는 의미다. NRDO로 초기 임상에 쓰는 자금과 수백명의 임상 지원자를 모집해 관리하는 후기 임상(임상 2~3상)에 투입되는 규모는 비할 바가 아니다. 돈이 돈을 부르는 업계인만큼 투자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후기 임상에 쏠린다. NRDO의 소외는 일종의 숙명이다.
비상장 NRDO 바이오텍은 시장에서 제 몸값(밸류에이션)조차 인정받기 어렵다. 상장 주관사들조차 메이드를 꺼리며 대놓고 업종을 변경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 NRDO 업체가 맞부딪히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신라젠이 NRDO의 길을 택한 까닭은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에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NRDO 체제에선 임상을 함께 이끌고 갈 파트너를 만들기 용이하다. 펙사벡이 항암바이러스인 점도 긍정 요인이다. 항암바이러스는 최근 6년 간 12건의 글로벌 L/O가 있었는데 이중 7건이 임상 초기 단계에서 성사됐다.
한 번의 좌절을 경험했지만 신라젠의 파이프라인 경쟁력은 여전하다. 펙사벡은 작년 10월 미국 FDA로부터 고위험 단계인 IIB-IV 단계 흑색종 치료를 위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미국 바이오텍 리제레논의 면역관문억제제 리브타요와 신장암 병용임상도 진행중이다. 이 과정에서 리브타요를 무상으로 공급받아 병용임상을 진행하는 계약을 맺었다.
신라젠의 최근 행보엔 생존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녹아 있다. 어렵고 먼 길이지만 방향은 옳다. 바이오 열풍의 선두주자가 무너지는 것은 업계 퇴보를 의미하는 만큼 과거의 영광을 내려놓은 자리를 책임감으로 채운 모습이다. 이제 거래재개를 위해 적절한 SI를 유치하는 일만 남았다. '명품 조연 바이오', NRDO 업체 신라젠의 변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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