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Money-Flix]영화<미나리>에서 쿠팡 창업 초기의 모습을 발견하다쿠팡의 초기 궤적과 묘하게 겹치는 <미나리> 속 주인공 제이콥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공개 2021-03-16 13:44:22
[편집자주]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들이 금융과 투자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배경과 함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참인 명제다. 머니플릭스(Money-Flix)는 전략 컨설팅 업계를 거쳐 현재 사모투자업계에서 맹활약 중인 필자가 작품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한다.
이 기사는 2021년 03월 16일 13: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가족과 함께 미국 남부 아칸소주의 시골로 이주한 주인공 제이콥(스티브 연)은 잡초들이 높게 자란 공터를 바라보며 “아빠는 빅 가든 하나 만들 거야”라고 외친다. 아내인 모니카(한예리)가 “Garden is small!”이라며 제이콥을 쏘아 붙이지만, 제이콥은 “No. Garden of Eden is big!”이라며 응수한다. 에덴 동산에 비견될 자기 가족만의 큰 농장을 직접 일궈 내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그렇게 시작되는 영화 <미나리>에서 제이콥의 그 계획이 성공했는지 여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낯선 땅에 정착해 농장을 만들어가며 제이콥의 가족이 겪는 일들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차분하게 그려진다. 예상치 못한 난관 속에서 가족이 해체될 위기까지 이르기도 하지만, 이를 헤쳐나가는 모습이 숙연하게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것이다. .
그런 이야기에 호평이 쏟아진 것은 유사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정이삭 감독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감독이 영화 속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특히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낯선 곳에서 온 몸으로 부딪히며 실행에 옮기는 아버지 제이콥의 모습에서는 감독의 짙은 연민이 묻어 나온다.
조금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영화 속 제이콥의 그런 모습은 얼마 전 미국 증시 입성에 성공한 쿠팡과 묘하게 닮아 있다. 미국 시민권자이자 학생이던 김범석 의장이 한국에서 쿠팡의 창업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제이콥의 사례와 상황적으로는 똑같다. 둘 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쿠팡의 창업 초기는 잘 알려진 것처럼 난관의 연속이었다. 롤 모델이었던 그루폰의 사업 모델이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자, 아마존을 새로운 롤 모델로 세우고 이를 도와줄 손정의 회장을 비롯한 외부의 조력자들을 맞이했다. 영화 속 제이콥 역시 혼자 농장을 만드는데 한계를 느끼고, 순자(윤여옥)와 폴(윌 패튼) 등의 도움을 받게 된다.
사업 모델의 변경 이후 빠른 성장을 이루어 내기는 했지만, 쿠팡 내외부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았다. 창업 파트너들이 이탈하고 자본확충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영화 속 제이콥도 모니카와의 관계가 틀어지며 가족 해체의 위기를 맞고, 농장 용수로 쓰던 지하수가 말라버리면서 재정적으로도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을 다 견뎌낸 쿠팡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결국 성공적인 미국 증시 상장이라는 오랜 목표를 달성했다. 반면 영화 속 제이콥 가족의 농장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성공 여부가 그려지지 않는다. 아마도 감독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겪는 사건과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 외적으로도 <미나리>와 쿠팡이 닮은 점은 너무 많다. <미나리>의 제작비는 브레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 Plan B가 댔고, 정이삭 감독도 미국인이며, 윤여정과 한예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연 배우들도 미국 국적자들이다.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이민 사회인 미국의 관객과 평단이 주목한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이민자’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쿠팡 역시 미국에 설립된 지주 회사의 자회사가 한국에서 사업을 한 것이고, 이번에 상장을 한 것도 미국 지주 회사다. 주주 구성으로 보면 대부분이 외국계 투자자로 이뤄져 있고, 김범석 의장을 비롯한 경영진들도 대부분 외국 국적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미나리>와 쿠팡의 성공에 환호하는 것이 한국인들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영화나 사업에서 국적을 찾는다는 것이 점점 무의미한 일이기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화건 사업건 누구에게 가장 큰 효익을 안겨줬느냐일 것인데, <미나리>와 쿠팡의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의 관객과 소비자다. 그런 의미에서 <미나리>와 쿠팡의 국적을 들먹이며 칭찬과 환호를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은 결코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 <미나리>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lPYxbbKYY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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