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3월 23일 07: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약바이오업계 기자로 입문한지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국내 바이오 투자 전문 벤처캐피탈에서 명망이 높던 임원급 심사역에 물었다. “바이오텍 투자를 결정할 때 임상 데이터나 파이프라인 정보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가 무엇인가요?”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창업주와 핵심 인력간의 결속력’을 1순위로 꼽았다.당시에는 선뜻 와닿지 않았지만 지금은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기자와 같은 바이오 ‘비(非) 전공자’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바이오벤처 설립 이후 C-레벨을 중심으로 창업 멤버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얘기였다. 핵심 인력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업체일수록 밸류에이션 관점에서 좀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당시 그는 설립 이후 5년간 연구소장 등 CTO급 인력이 한번도 안 바뀐 기업과 여러 번 바뀐 기업이 있다면 어느 쪽에 투자하겠냐고 되물었다. 연구소장이 회사를 떠나 또 다른 바이오벤처를 만든다면 기존 업체의 기업가치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CFO가 스톡옵션 행사와 함께 이직을 결정했을 때 투자자들은 해당 회사의 미래가치가 더 이상 없는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더벨은 올해 초 코스닥 시총 상위 제약바이오 업체들을 중심으로 최근 3년간 핵심 임원진들의 변경 또는 이탈 정도를 조사했다. 상장 후 기간이 3년 미만인 곳들은 상장 시점을 기준으로 이후 주요 인사들의 변경 빈도를 분석했다. 주로 사내이사진을 중심으로, 등기 또는 미등기임원의 변경을 살폈다. 결과적으로 주요 임원진의 이탈이 잦은 기업일수록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타격을 입은 것으로 확인된다.
임원 이탈의 대부분은 창업자와의 불화가 원인을 제공한다. 특히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 창업자가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할 경우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커진다. 설립 초기에는 결속력을 보이다가도 정작 성과가 나기 시작했을 때 조직 내 균열이 일어난다. 그만큼 인력 관리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결과다. 과도한 직원 이탈률 역시 기업가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바이오텍의 임원 교체 주기나 이탈률은 투자 판단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일부 투자자들의 경우 '임상'이라는 하나의 가치에만 베팅했다가 손실을 입기도 한다. 하지만 매니지먼트(management)에 문제가 있는 회사의 R&D 또는 사업 개발이 잘 될리가 만무하다. 투자자로선 임상 성공 또는 실패를 막연히 기다리기보다 창업주의 독단적 경영에 따른 안팎의 '잡음'을 미리미리 체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창업자(특히 연구자) 개인의 연구 성과와 능력이 바이오텍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논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력있는 전문가를 모아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관리 역량이 좀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더벨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상위 25위권 바이오텍의 리더 가운데 절반 가량은 제약이나 바이오 전공자가 아니었다. 의미있게 짚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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