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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은행장이 안 보인다 [thebell desk]

김장환 금융부장공개 2021-04-27 08:28:04

이 기사는 2021년 04월 23일 07: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 2001년부터 17년간 CEO를 맡았다. 기나긴 시간임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데 기여를 했다는 점이 가장 큰 공으로 꼽힌다. 가정이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한미 통화스와프를 잇는 연결고리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한국은 제2의 IMF 사태를 맞아 허덕였을 지 모른다.

무슨 일개 은행장을 두고 국가지대사와 맞물린 거창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속사정들이 있다.

미국은 2008년 리먼 사태로 어려운 경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달러가 부족해 위기를 겪고 있던 우리 정부의 통화스와프 체결 요청을 외면했다. 물꼬가 트인 건 그 해 10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씨티그룹을 이끌던 로버트 루빈 회장을 만나면서다.

루빈 회장은 미국 재무장관을 지냈던 인사로 미 관가 인맥이 화려했다. 그가 앞장서 뉴욕연방은행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힘을 써 준 덕분에 당시 한미 통화스와프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강 장관과 루빈 회장의 만남 첫 주선부터 미팅 현장까지 동행하며 연결해준 사람이 바로 하 전 행장이다. 당국 인사도 풀지 못한 난제를 하 전 행장이 나서줬던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가 그만큼 씨티그룹 내에서 인정받고 있었고, 또 소통 창구도 넓게 가지고 있었던 덕분이다. 씨티그룹은 그를 매개체로 삼아 한국 정부와 끈을 이었다. 하 전 행장이 외국계은행 출신 최초로 은행연합회장(2014년~2017년) 자리에 올라선 것도 괜한 게 아니다.

#박진회 전 씨티은행장.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CEO를 맡아 그룹사 주요 이슈가 터질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인물로 평판이 높다.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2014년 당시 불거졌던 한국씨티은행의 철수설 진화가 꼽힌다.

'철수설은 헛소문!' 그의 첫 취임 일성이었다. 당시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2014년) 6월 말 단행한 희망퇴직과 점포 통폐합 후 떠도는 구조조정설은 근거가 없으니 현혹될 이유도 여유도 없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언론사 간담회 등을 직접 주도하며 설을 진화하는 데 앞장섰다.

행장이 직접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적극성을 보인 건 시장에 충분히 신뢰를 줄 만한 일이었다. 특히 그룹과 의견 조율 없이 꺼내기는 어려울 말들이었다. 씨티그룹은 그를 한국 시장에 정착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한다.

어수선한 조직 분위기를 잠재운 그는 리테일 점포 축소와 디지털 소비자금융 전환 절차에 힘을 쏟았다. '강소은행'으로 거듭나는데 큰 일조를 했다는 안팎의 평을 여전히 듣고 있다.

#유명순 씨티은행장. 민간은행 최초의 여성 CEO로 지난해 10월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 시기 씨티그룹이 여성인 제인 프레이저를 CEO에 임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 행장 선임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그가 결국 선임되자 한국 시장과 교감을 위한 그룹의 결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유 행장이 부임한 지 불과 4개월도 안돼 기대감은 무너졌다. 올 들어 씨티그룹의 한국 철수설이 불거진 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내부 직원이나 외부에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서 2월 외신을 통해 씨티그룹이 한국시장에서 철수를 검토 중이란 소식이 국내에 처음으로 전해졌고 이달 들어 이를 공식화했다. 한국을 포함 아시아 몇개국에서 리테일부문은 철수하고 IB부문만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 금융시장이 이로 인해 어수선하다.

정작 한국씨티은행 선장인 유 행장은 보이질 않는다. 임직원의 반발 기류가 확산되며 경영진에게 답변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묵묵부답이다. 설이 현실화된 지금까지 한 번의 입장 표명도 없었다. 하다 못해 씨티그룹과 금융당국의 '통역사' 역할이라도 해줘야 할 듯한데 두문불출이다.

일각에선 씨티그룹으로 보면 한국씨티은행은 '1% 안팎'에 불과한 자산을 지닌 곳이어서 유 행장이 아는 바도 없고 발언권도 없는 것이라고 변론한다. 실제 2020년 말 자산규모로 보면 씨티그룹은 2조달러, 한국씨티그룹은 15억달러에 불과하다. 씨티그룹 차원에서 보면 한국씨티은행장은 본사 부장급 임원에 불과할 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하 전 행장, 박 전 행장이 이끌던 시절에도 한국씨티은행의 규모가 그룹사에 비해 보잘것 없었던 건 별반 다르지 않다. 유 행장의 행보를 단순 자산 규모의 차이를 두고 해석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씨티그룹의 철수를 불안하게 여기는 시선이 많다. 시장에선 한국씨티은행을 '금융계의 주한미국'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달러 유동성 문제를 겪던 과거 미국 정부와 가교 역할이 돼 줬기 때문이다. 하 전 행장, 박 전 행장 정도의 발군은 아니더라도 유 행장도 무언가 행동은 보여줘야 할 시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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