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한국 반도체 산업은 끝났다 thebell desk

최명용 기자공개 2021-05-20 08:10:56

이 기사는 2021년 05월 18일 07:58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끝났다."

최근 한 반도체 장비 회사 CEO에게 들은 말이다. 여전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탁월하다.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는 수십조원의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반도체 산업이 끝났다'고 짚었다.

30년 넘게 반도체 장비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20년 전을 회고했다. 당시 일본과 한국 반도체 기업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장비를 납품했다. 한국에선 3일만에 세팅이 끝났고 바로 양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에선 검수에만 몇주가 걸렸고 각종 서류 작업에 몇 달이 필요했다. 장비를 제대로 세팅하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다. 물론 양산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3일과 6개월의 차이가 20년 동안 쌓였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성장했고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문을 닫거나 매물로 나와 조각조각 해체됐다.

반도체는 첨단 산업이다. 고도의 기술과 자본 인력이 필요한 산업이다. 여기에 더해 '시간'이 생명인 산업이다.

과거 반도체 산업은 '무어의 법칙'이 법칙이 통용됐다. 인텔 설립자 중 한명인 고든 무어는 마이크로칩(반도체)의 집적도는 18개월(훗날 24개월로 정정)마다 두배로 늘어난다는 법칙을 내세웠다.

무어의 법칙을 깨트린 것이 '황의 법칙'이었다. 2002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황창규 사장이 '메모리 신성장론'을 발표하며 반도체 집적도는 12개월마다 두배로 늘어난다고 선언했다. 이를 실제로 가능하게 한 것은 삼성전자 연구진들의 밤낮없는 연구 개발 덕이었다. 인텔보다 6개월 먼저 집적도를 두배로 늘려 간 삼성전자의 시간 싸움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는 힘이 됐다.

최근 반도체 산업의 균열이 여러 군데에서 목격된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 앞선 기술을 발표하는 회사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대만 TSMC는 삼성전자보다 반년정도 앞서 3나노라인 양산에 들어갔다. TSMC의 5나노 생산 라인은 삼성전자보다 더 높은 수율을 자랑한다. 미국 마이크론은 176단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반도체 회사는 더 이상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최고의 회사가 아니다. 유수의 대학교에서 천재급이라 일컬어지는 인재들은 구글과 페이스북, MS의 손짓에 먼저 흔들린다. 실리콘밸리를 들렀다가 판교 일대의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민)를 거친 뒤에야 수원(삼성전자)과 이천(SK하이닉스)으로 눈길이 간다. 판교가 낫지, 수원과 이천으로 출퇴근하긴 싫다.

최근 게임을 비롯해 ICT 업계에선 연봉 인상 경쟁이 벌어졌다. 뒤이어 SK하이닉스에서도 성과급 문제로 불협화음이 일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성과급 얼마를 더 챙겨주기로 했다. 삼성이나 SK가 네카라쿠배와 같은 연봉 체제를 갖추긴 힘들다. 모두가 똑같이 나눠 갖자는 '공정'의 시대는 제조업 기반의 반도체 산업이 택하기 힘들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에서 태동해 일본이 바통을 이었고 한국에서 꽃을 피웠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아시아에 빼았겼던 반도체 산업을 다시 키우겠다는 선언을 했다. 앞서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산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가로막고 있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은 20년 전 한국처럼 3일만에 장비 세팅을 하며 시간 싸움을 하고 있다.

인재 육성은 고사하고 반도체 회사들에게 노조를 만들도록 종용하고 있다. 연구 개발진들은 주40시간 근무를 채우면 컴퓨터를 꺼야 한다. 장비를 새로 들이고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려면 화학물질 등록을 해야 하고 외부 위원회 검수까지 받아야 한다. 사활을 걸고 시간 싸움을 해야 하는 와중에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당장 한국 반도체 산업이 망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 변화가 없다면 암울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끝장날 때까지 20년이 짧을 수 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로 6 (을지로 1가) 금세기빌딩 5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