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의 변신]박찬구 회장 퇴임과 맞물린 '레짐 시프트'①투자 기조·지배구조·후계자 지위 모두 '급변'
박기수 기자공개 2021-06-28 13:44:39
이 기사는 2021년 06월 24일 15: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레짐 시프트(Regime shift). 생태계·기후·금융 등 한 시스템의 구조와 기능에 있어서 크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뜻하는 단어다. 최근 석유화학업계에서 금호석유화학이 이런 레짐 시프트 과정을 밟고 있다.주요 주주들 간의 경영권 분쟁, 오너 일가의 일신 상 변화 등 '소유' 측면과 투자 기조·지배구조 등의 '경영' 측면 모두에서 변화를 겪고 있다. 2010년대 자율협약 졸업 이후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점은 올해 초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와의 경영권 분쟁과 뒤이어 이뤄진 박찬구 회장의 대표이사직 퇴임이다. 자율협약 조기 졸업부터 박 회장의 퇴임까지 금호석유화학과 앞으로의 금호석유화학은 많은 측면에서 큰 변화가 예고돼있다.
◇보수 경영의 대명사가 반 년만에 '1조 투자'
우선 투자 기조다. 금호석유화학은 자율협약 졸업 이후 업계에서 '보수 경영'의 대명사였다. 무리한 외형 확장보다 내실을 추구하는 박찬구 회장(사진)의 경영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박 회장은 2010년대 초반 자율협약 당시 우선 안정적 재무 상황을 되찾는 것이 1순위라고 봤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남겨 놓은 부실을 해결하고 부채비율을 200% 밑으로 낮추는 데 전력을 다했다.
박 회장은 당시 금호석유화학의 '자본 독립'의 중요성을 가장 중시했다고도 알려진다. 자율협약이 끝나갈 때쯤 채권단에서 재무구조 개선 약정 연장을 원하기도 했으나 박 회장은 은행자본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자율협약 졸업을 강하게 추진했다. 결국 '조기 졸업' 이후 박 회장의 일관적인 '짠물 경영' 결과 2010년대 중반 부채비율과 순차입금비율 등 각종 재무지표가 100%대 중반으로 회복됐다.
이토록 차입을 꺼렸던 총수 밑에서 작년 말 의외의 딜(Deal)이 성사된다. 금호석유화학이 금호리조트를 2554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이 딜을 둘러싸고 업계는 의문부호를 붙였다.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박철완 전 상무도 금호석유화학의 리조트 인수를 '헛발질'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딜은 올해 4월 1일 성황리에 클로징됐다. 본업 투자에도 신중에 신중을 가하던 박 회장의 금호리조트 인수에 업계의 눈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본업 투자'가 시작됐다. 박철완 전 상무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직후 자회사 금호미쓰이화학은 4000억원이라는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전남 여수공장을 증설한다고 밝혔다. 메틸렌디페닐디이소시아네이트(MDI) 공장의 생산능력을 연간 41만톤에서 61만톤으로 키운다.
5월에는 일본의 JSR과 50대 50으로 합작해 세운 금호폴리켐의 JSR 지분 50%를 1513억원에 인수했다. 금호폴리켐은 산업용 소재에 사용되는 에틸렌프로필렌고무(EPDM)와 TPV 등을 생산하는 합성고무 전문기업으로 EPDM 기준 글로벌 4위 생산 능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곧이어 최근 코로나19로 수혜를 입은 NB라텍스 사업에도 256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증설한다고 밝혔다. 이미 NB라텍스는 7만톤 증설 작업을 진행 중이다. 증설 작업이 진행하는 도중에 더 큰 증설 계획(24만톤)이 나온 셈이다. 2023년 말 증설이 완료할 경우 금호석유화학은 총 95만톤의 NB라텍스 생산 능력을 보유한다. 글로벌 1위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추가적으로 47만톤을 더 증설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금호리조트 인수부터 NB라텍스 증설까지 금호석유화학그룹에서 실행하고 계획한 투자 규모만 1조원이 넘는다. 10여 년간 조용하던 회사가 단 몇 달만에 1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 셈이다. 단순한 분위기 전환을 넘어 '체제 전환(레짐 시프트)'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려 보이는 이유다.
◇총수의 대표 퇴임, 후계자들의 승진
투자 기조도 투자 기조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따로 있다. 박 회장의 등기임원 퇴임과 맞물린 금호석유화학의 이사회 변화다. 수십년동안 금호석유화학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수장 자리를 지켰던 박 회장은 올해 5월 돌연 퇴임했다. 대표이사는 백종훈 사장 단독대표 체제가 됐다. 또 박 회장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고영도 최고재무관리자(CFO, 전무)와 고영훈 중앙연구소장(부사장)이 이사회에 합류했다.
박 회장 퇴임으로 금호석유화학은 '오너 없는 이사회'가 만들어졌다. 또 박 전 상무와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이사회 산하 위원들도 탄생했다. 좋은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상장사들이라면 대부분 보유하고 있는 내부거래위원회, 보상위원회, ESG위원회가 대표적이다. 또 이사회 10명 중 사외이사를 7명으로 채우면서 사외이사 중심의 독립적인 이사회 경영 구조를 갖췄다.
여기에 최근 박 회장의 자녀들이자 현 금호석유화학 임원진인 박준경 전무와 박주형 상무가 각각 부사장, 전무로 승진했다. 1948년생인 박 회장의 퇴임과 함께 3세들이 '최고경영진'에 한 발자국 앞서간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을 대신할 적통 후계자는 전부터 박준경 부사장과 박주형 전무로 낙점돼 있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금호석유화학을 이끌던 총수의 대표 퇴임은 상징적인 사건"이라면서 "'조카의 난'에 이어 총수의 이사회 퇴임 등 자율협약 졸업 이후 금호석유화학이 급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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