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이어 SK하이닉스도…'ARM 공동인수' 둘러싼 쟁점 셋 인텔과 협력도 가능한 시나리오, 삼성전자 참전 가능성에도 관심
김혜란 기자공개 2022-04-04 07:00:18
이 기사는 2022년 03월 31일 14: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국 인텔에 이어 SK하이닉스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 암(ARM) 인수전 참여를 선언하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 간 공동인수 논의에 불을 붙였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SK스퀘어 부회장 겸임)이 기업명을 언급하며 인수·합병(M&A) 의지를 내비친 건 이례적인 일이라 그 배경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ARM의 사업구조상 단독인수는 불가능해 글로벌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이 큰 만큼, 이런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전략적 투자자(SI)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경영권을 누가 가져가느냐 등이 쟁점화될 수 있다. 실제로 공동인수구조 설계가 가능할지, 이를 통해 공정거래 이슈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가 이 딜의 최대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SI 공동인수 시나리오의 부상…삼성전자는?
ARM은 모바일 칩을 설계해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공급하는 회사다. 세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95%가 ARM 설계도를 활용한다. 사실상 독점이다.
현재 대주주는 일본 이동통신사 소프트뱅크다. 2019년부터 매각설이 나왔고 이듬해 엔비디아에 매각하는 내용의 본계약까지 체결했으나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벽을 넘지 못해 올해 초 최종 무산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규제당국은 물론 퀄컴과 인텔, 중국 화웨이 등 기업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ARM을 특정 업체가 인수하면 기술 제공에서 차별이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차례 매각 실패 후 대안으로 급부상한 게 ARM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을 공동으로 나눠 갖는 것이다. M&A업계에선 SK하이닉스와 인텔 외에도 삼성전자와 미국 애플, 대만 미디어텍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인수전 참여 가능성도 거론된다.
◇누구와 어떻게?…중국 배제 '한·미·일·대만' 주도 가능성
SI들이 ARM 공동인수를 시도해볼 수 있으나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경영권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아무도 경영권을 쥐지 않고 지분을 공동으로 배분한다면 협상이 진척될 수 있다. 재무적 투자자(FI)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미국과 중국 간 패권다툼이 치열한 국제 정세상 중국 기업이 컨소시엄에 포함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을 배제한 한국과 미국, 일본, 대만 등의 기업이 컨소시엄 구성에 머리를 맞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18년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할 때 했던 것처럼 '한·미·일' 컨소시엄을 다시 시도할 수도 있다. 한국과 대만 기업이 공동 투자하거나, 중간에 미국계 사모투자펀드(PEF)를 끼워 무한책임사원(GP)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많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 메모리 투자할 때처럼 PEF 운용사를 앞세우고 SK하이닉스는 경영권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구조로 수동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한다면, 공정거래이슈는 리스크가 아예 없진 않지만 완화되거나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며 "박 부회장은 이런 것까지 모두 감안해 공동인수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박 부회장이 구체적인 M&A 구조를 정해놓고 선언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ARM 인수전에서 배제되고 다른 경쟁업체들이 인수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막기 위해, 딜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글로벌 시장에 선제적으로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 M&A 전문 변호사는 "국내 기업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컨소시엄을 맺는다면 미국에서 공정거래 승인을 받기가 어렵겠지만, 인텔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지분을 조금씩 나눠 가지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며 "SK하이닉스가 (먼저 인수전 참여를 선언한) 인텔에 보내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M&A 키워드'미래형 반도체'
SK그룹 중에서 누가 인수주체로 나설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SK하이닉스의 모회사이자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투자전문회사인 SK스퀘어가 될지, SK ICT연합(SK스퀘어·SK하이닉스·SK텔레콤)이 나설지는 정해지지 않았단 게 SK하이닉스 측 설명이다.
ARM 인수가가 50조원 가량으로 거론되는 '빅딜'인 만큼 투자 여력이 있는 SK하이닉스가 나설 가능성도 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인 데다, 파운드리도 하고 있으나 구형 팹(Fab, 공장)이라 제조공정에서 시너지를 낼 접점은 없다. 그러나 메모리 기술이 계속 진화하는 만큼 시스템 반도체 기업 투자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 역량을끌어올리 데 의미 있는 행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그래픽 디램 'GDDR'을 기반으로 연산 기능을 추가한 메모리 반도체 PIM(Processing-In-Memory) 'GDDR6-AiM'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만 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저장과 연산 기능을 함께 갖춘 차세대 반도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보도자료를 통해 "향후 PIM 기술이 진화하면 스마트폰 등 ICT 기기에서 메모리반도체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메모리 센트릭(Memory Centric) 컴퓨팅'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가 SK ICT 연합이 공동투자해 세운 인공지능(AI) 반도체 법인 사피온 지분 25%를 확보한 것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
특히 박 부회장은 SK스퀘어를 2025년까지 순자산가치(NAV) 75조원의 회사로 키우겠단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현재 24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NAV를 3배 이상 끌어올리려면 M&A가 필요하다.
한편,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인 키파운드리 인수 절차를 밟고 있다. 기업결합 심사의 첫 관문인 국내 공정거래위원회 문턱은 넘었다. 중국 등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최종 인수된다. 업계에선 키파운드리를 SK스퀘어의 자회사로 붙일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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