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의 귀환]올드보이로 돌아오려면①전영현·이석희·이윤태 복귀…공통의 키워드는 '반도체'
조은아 기자공개 2024-01-24 10:33:44
[편집자주]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흔히 나이듦을 위안하는 말로 쓰이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주는 이들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이른바 올드보이들이 돌아왔다. 거센 세대교체 바람 속에서 이들을 불러온 건 결국 기업들의 '위기의식'이다. '또?' 라는 의문도 들지만 돌아온 이들의 면면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더벨이 지난해 재계의 새 인사 코드로 떠오른 '올드보이의 귀환'을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2일 08: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재계를 관통하는 '인사 코드'는 세대교체였다. 4대 그룹을 비롯해 주요 그룹의 총수들이 2세를 넘어 3~4세로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전문경영인들의 평균연령 역시 점차 낮아졌다.어느덧 '1970년대생 최고경영자(CEO) 그리고 1980년대생은 임원'은 흔한 일이 돼버렸다. 인사 기조가 그리 개방적이지 않은 LG그룹에서도 1970년대생 계열사 대표가 나왔다. 자산 규모 11조원이 넘는 LG이노텍을 1970년생 문혁수 대표가 이끈다. LG그룹의 새 간판 LG에너지솔루션을 이끄는 것도 1969년생 김동명 대표다.
한쪽이 젊어지는 사이 다른 한쪽에선 이른바 '올드보이'들이 돌아왔다. 지난해 말에만 전영현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 이석희 SK온 대표이사 사장, 이윤태 LX세미콘 대표이사 사장이 화려하게 복귀했다. 한때 재계에서 손꼽혔지만 사실상 전성기는 지난 걸로 여겨졌던 이들이다. 범위를 넓히자면 한명호 LX하우시스 대표이사 사장, 이윤모 LG에너지솔루션 부사장 등도 있다.
◇전영현 부회장·이석희 사장·이윤태 사장의 '화려한 복귀'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당연한 얘기지만 현역 시절 각각의 분야에서 족적을 남긴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다른 공통점은 5명 가운데 4명이 전자업계 출신이고 이 중 3명은 반도체 분야에서 오랜 기간 연구개발(R&D) 쪽에 몸담았다는 점이다.
전영현 부회장은 LG반도체(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거친 반도체 전문가다. 1999년부터 삼성전자에 재직하며 약 20년간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2017년엔 배터리 발화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삼성SDI에 구원투수로 등판하기도 했다.
이석희 사장은 SK하이닉스를 넘어 세계적인 반도체 석학으로 꼽힌다. 1990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입사하면서 반도체 산업에 발을 들였고 2000년부터 11년간 인텔에서 근무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한 경험도 있다. 2018년 말부터 2022년 3월까지는 SK하이닉스 대표를 지냈다.
이윤태 사장 역시 삼성전자에 입사해 줄곧 반도체 쪽에 몸담았다. 시스템LSI 개발실장, LCD 개발실장 등을 역임한 설계 전문가다. 삼성그룹에서의 마지막 경력은 삼성전기 대표로 쌓았다.
눈에 띄는 점은 3명 가운데 현재 반도체 관련 경력을 이어가는 사람은 이윤태 사장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석희 사장은 배터리 회사에서 그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전영현 부회장은 아예 업종간 구분을 넘어 그룹 차원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역할을 맡았다. 반도체 지식 하나가 이들이 복귀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배경은 아니었다는 의미다.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는
이보다는 이들이 수십년 동안 직접 겪으며 헤쳐온 반도체 산업 그 자체의 특수성에 그 비결이 있다. 반도체 산업은 전후방 밸류체인 연계 및 기술과 인재의 집약이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흔히 '산업의 쌀'로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 휴대전화 등 IT 기기를 비롯해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전방산업이 매우 다양하다. 후방산업 역시 정밀기계, 에너지, 화학 등 그 폭이 상당히 넓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산업 전반을 보는 시각 역시 넓어질 수밖에 없다. 전영현 부회장이 '포스트 반도체'라는, 어찌보면 반도체와 동떨어져 있는 새로운 과제를 짊어진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또 우리나라가 후발주자로 시작해 선두를 탈환한 몇 안되는 산업이다. 지난 수십년 기술 발전과 경쟁이 그만큼 치열했던 산업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기술 쪽에 몸담으면서 자연스럽게 위기 극복 능력이나 상황 판단 능력을 키웠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후발주자로서 열심히 추격하고 수차례 출혈경쟁까지 벌인 끝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케이스"라며 "반도체 산업의 중심에서 오랫동안 몸담았던 건 그만큼 판단력이나 리더십 측면에서 믿을 만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결국 이들을 불러온 공통의 키워드는 결국 '위기'다. 삼성전자에는 반도체와 휴대폰을 이을 미래 사업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SK온은 양적 성장 이후 수율 개선과 원가 경쟁력 확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LX세미콘 역시 신규 사업 발굴과 매출처 다변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복합적 위기 속에선 경험과 연륜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결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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