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8년 07월 04일 15: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2월말 신용평가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신용사건이 터졌다.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비교적 건실한 것으로 알려졌던 우영이 최종 부도를 낸 것이다.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흑자를 내고 있었던데다 삼성전자 남품 점유율이 높은 업체여서 우영이 갑자기 부도를 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회사채 신용평가를 받은지 불과 열흘 남짓 지난 시점에서 부도가 났기 때문이다. 당시 평가사는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로 등급 부여 업체가 부도를 낸 것은 각각 지난 2005년과 2007년 이후 처음 이었다.
◇신평사의 변명: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이야…"
우영이 부도를 내자 신용평가사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당장 부도날 회사의 신용등급을 유지(BB-) 시킨 것도 그렇거니와 신용평가사가 평가대상업체의 단기 유동성 사정에 대해 까막눈이나 마찬가지 아니었느냐는 지적이었다.
사실 우영의 자금난에 대한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삼성전자에 대한 납품은 줄고 있었고 재고자산은 크게 늘고 있었다. 현금이 쪼들릴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지난해엔 고금리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신용평가사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쉽게 부도를 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는게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의 고백이다. 신용평가를 하면서, 그것도 자금난에 시달리는 업체에 대해 충분한 자료확보와 면밀한 검토를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동성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변명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의 말대로 "그것이 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영은 1월 초 100억원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면서 'BB-' 등급을 받았다. 곧이어 15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추진했고, 2월 18일에 한기평과 한신평은 'BB-'를 유지했다.
BW에 대한 평가의뢰가 들어왔을 당시 2007년 말 기준의 사업보고서가 아직 작성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평가사들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가결산 자료를 제출받아 검토에 들어갔다.
2007년 3분기말 대비 4분기말의 운전자금과 순차입금이 각각 30억원, 40억원씩 늘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2008년 1월의 평가와 크게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평가사들은 밝혔다.
한기평은 "단기적인 자금수급 계획과 차입 부담 수준의 변동추세 등을 고려할 때 유동성 위기를 감지할만한 심각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우영 측이 BW 조달 과정에서 평가사 측에 제출한 자금의 사용계획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차입금 상환 자금은 48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대용치는 대용치일 뿐
박춘성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분석 시점에 따라 유동성 분석의 결과가 매우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 "단순한 재무비율만이 아닌 영업, 재무 측면에서 다양한 인과관계 분석이 수반되기때문에 객관적 자료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기업이 등급을 의뢰하면서 일보 형태의 재무정보를 제출한다 하더라도 2주 내외의 분석 기간을 거쳐 등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공시되는 시점에서 기업의 유동성은 의뢰일 기준의 정보와 상이할 수도 있다.
유동성 변화가 심한 투기등급 업체라면 애로가 더 커진다. 더군다나 유동성 분석에서 빼놓을 수 없는 CP 정보에의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CP발행정보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잔액과 만기별 상환규모, 금융기관별 보유잔액이 보고되지만 기업의 신용정보로 접근이 제한적이다. 이에 발행총액을 파악하는 정도가 가능하며 평가업계는 기업이 제출한 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하는 선에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발행 절차가 까다로운 회사채와 달리 CP는 거래은행과 간단한 협의를 통해 발행이 되기도 해 어제와 오늘의 유동성이 달라질 여지도 있다. 내부자가 아닌 이상 제3자가 공개된 자료만으로 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평가사들은 분석 시점에서의 유동성을 파악하기 위해 가결산 자료를 비롯, 합계잔액시산표와 은행연합회의 여수신현황 등을 동원하고 있다.
또한 은행의 여신정보와 연합회의 여수신현황의 대조를 통해 자료의 진실성을 판단한다.
은행에서 대출이 실행될 경우 은행연합회의 여신정보에는 등재가 되지만 일부 금융기관은 자료를 올리지 않는 경우도 있어 여수신현황보다 여신정보의 수치가 작은게 일반적이다.
만약 여수신현황의 수치가 더 크다면 추가로 사유를 파악해야 하는 식이다.
황인덕 한국기업평가 평가4실장은 "정확한 현황을 파악할 수 없지만 그나마 현재의 인프라 상으로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면서 "기업의 생생한 자료 접근에 제약이 많다"고 토로했다.
올 4월께 평가사들이 앞다퉈 기업어음의 정기평가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한신평은 필수 평가자료를 보강하고 분석 방법론을과 동시에 CP평가의 사후관리 과정 차원에서 개별 기업의 유동성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기평은 근본적으로 CP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CP발행등록제도와 자산유동화법에 의한 ABCP 콘듀잇의 도입 등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황인덕 한기평 실장은 평가업계 내 'CP정보센터'를 운용해 일본과 같이 발행자가 CP 발행, 유통실적을 정기적으로 통보하고 사후관리되도록 하자는 제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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