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9년 09월 18일 10: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하이트그룹의 재무구조를 단숨에 개선할 수 있는 딜이라는 점 때문에 진로 상장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게다가 조단위에 달하는 공모 규모로 인해 증권사 투자은행(IB) 부서는 물론이고 일반 투자자들도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기업공개(IPO) 과정은 헛점 투성이었다. 톱니바퀴가 안맞아 계속 헛도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런 주관사 변경부터 법률 지식 부족으로 인한 수요예측 재실시까지 규모에 걸맞지 않게 어리숙했다.
당초 공모가가 기대에 못미칠 경우 IPO 철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연출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1조원에 달하는 재무적 투자자(FI)의 풋옵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하이트그룹 오너가 공모 일정을 강행키로 최종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이들 FI 지분을 처리하지 못하면 1년 가량의 시간을 또 다시 기다려야 한다.
◇무리한 공모가 산정 = 공동대표주관사인 삼성증권은 발행사인 진로와 협의한 후 공모희망가격을 5만4000~6만원으로 적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수요예측을 거쳐 최종 공모가를 확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시장 컨센서스는 5만원 안팎이었다. 현재 맥주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52%를 유지하고 있는 하이트홀딩스의 주가수익률(PER)이 12배 가량인데, 진로가 이를 넘기 힘들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수요예측 직전 "진로 공모가가 5만원 이하가 될 것"이라며 "진로의 성장잠재력이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애널리스트도 "하이트맥주의 PER를 적용할 때 진로의 공모가는 지난해 주당순이익 3600원 기준 4만3000원 정도”라며 "여기에 신주상장 프리미엄을 덧붙여도 진로의 공모가가 5만원 이상이 되기는 힘들다"고 분석했다.
수요예측에 참여, 공모가를 결정할 기관투자자들도 5만원대 초중반의 공모가격을 예상했다. 가격에 대한 우려는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투자설명회(IR)를 할 당시 이미 노출됐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진로 대주주인 하이트홀딩스와 주관사는 시장 상황을 무시한 채 고가의 공모가 밴드를 고수, 수요예측을 밀어붙였고 결국 밴드에도 못미치는 가격이 나왔다. 이로 인해 국내 IPO 사상 처음으로 수요예측을 다시 치르는 해프닝을 연출하게 됐다.
◇법률 이해도 부족 = IPO 과정에서의 법적, 제도적 이해도가 떨어진 점도 도마에 올랐다.
진로측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이후인 지난 10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진로는 순이익 50% 배당(배당성향 50%), 자사주 매입·소각, 2015년 매출 1조원, 시장점유율 60% 달성이라는 공격적인 가치개선 방안을 내놨다.
이례적이었다. 당시 증권가에선 진로가 공모가를 높여 재무적 투자자(FI)들에게 약속한 투자손실 보전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같은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해외 투자자들이 간담회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엉뚱한 상황이 연출됐다. 증권신고서에도 들어있지 않은 내용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건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 공모 일정 자체를 중단해 버린 것이다. 해외 투자자의 담당 변호사들은 공모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의견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공모가를 높이려던 진로의 의도는 무산됐고, 상장 일정만 늦어지게 됐다. 법적인 이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하이트와 이를 제대로 자문하지 못한 주관사 공동의 책임이라는 지적이다.
◇하이트 추가 자금소요 = 공모가가 기대보다 낮게 나옴에 따라 추가적인 자금 소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진로는 지난 6월 성공적인 공모를 위해 '마케팅 개선 방안'이라는 프리젠테이션을 실시, 삼성증권을 대표주관사단에 포함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최종 공모가가 6만1000원보다 낮게 결정될 경우 하이트측은 재무적 투자자(FI)인 교원공제회(791만주)와 군인공제회(565만주)의 풋백옵션 행사를 막기 위해 차액을 보전해 줄 예정이다. 두 공제회가 보유하고 있는 진로 주식의 원가는 6만1000원 가량.
이에 따라 새로운 공모가 밴드 내에서 가격이 결정되면 하이트측은 주당 1만~1만5000원 가량의 금액을 보전해 줘야돼 약 1400억~2000억원의 자금 소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하이트측은 이같은 자금 마련을 위해 또다른 딜을 진행해야할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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