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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 IPO 수요예측 할까말까 '곤혹' 공모가 산정 기준 없어...발기인-투자자 이해 상충

이재영 기자공개 2010-01-15 14:54:50

이 기사는 2010년 01월 15일 14: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SPAC)를 준비 중인 증권사들이 기업공개(IPO)시 수요예측 과정을 포함할지 여부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라 공모가를 산정할 기준이 없는데다 발기인과 투자자간 이해가 상충돼 갈등의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스팩은 일반 공모를 통한 IPO 후 조달 자금으로 인수합병(M&A)을 진행, 차익을 남기는 구조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스팩은 상장 시 일반적인 IPO와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반 IPO와 다른 점은 실사 과정이 간소해 상장 예비심사 기간이 2달에서 1달로 짧아졌다는 것뿐이다.

문제는 수요예측이다. 수요예측은 IPO에서 합리적인 공모가를 가늠하기 위한 과정으로 발행사와 주관사가 희망공모가를 제시하면 기관투자가들이 이를 바탕으로 원하는 가격과 수량을 써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공모가 결정엔 주가순이익배율(PER)·주가순자산배율(PBR)같은 비교지표와 함께 기업의 발전성·안정성·상장프리미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스팩은 영위하는 사업이 없다. 우량기업 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서류상' 회사다. 매출액·순이익 같은 일반적인 재무제표가 없다. 일반 IPO에 사용하는 가치 측정(밸류에이션) 방식이 아무런 효용이 없다는 말이다. 투자자들은 주관사가 제시한 공모 희망가가 적절한지 판단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스팩 IPO 과정에서 발기인(주관사 포함)과 투자자는 사실상 적대 관계다. 한 쪽 몫이 늘어나면 다른쪽 몫이 줄어드는 제로섬(zero-sum 게임)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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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억원을 모집하는 스팩이 있고 여기에 주관사를 포함한 발기인이 20억원을 투자한다고 가정하자. 발기인들은 주식을 액면가(500원)에 취득한다. 총 400만주다. 나머지 180억원은 공모로 조달해야 한다. 공모가가 1000원이면 발기인들이 가진 400만주의 지분율은 18%에 불과하게 된다. 500원짜리 주식이 1000원이 된 셈이니 공모 직후 수익률은 100%다.

만약 공모가를 2000원으로 잡으면 발기인들의 지분율은 30.77%로 뛴다. 공모 직후 수익률은 300%다. 공모가가 4000원이라면 발기인들은 20억원을 투자해 200억원 짜리 스팩의 지분 47%를 가지게 된다. 물론 발기인들은 합병 주주총회 때 의결권 행사가 제한돼 지분율에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지분율이 높으면 합병 신주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아갈 수 있다.

투자자들의 입장은 반대다. 공모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발기인과의 비교 수익률은 떨어지게 된다. 또 합병 뒤 주가 추이에 따라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만큼 초기 공모가가 높을 수록 기대 이익 역시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수요예측을 실시한다면 투자자들은 무조건 액면가에 가까운 가격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그 자신이 한명의 발기인이기도 한 주관사는 최대한 공모가를 높여야 한다. 수요예측이 합리적 공모가 산정이 아니라 '힘겨루기 판'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수요예측을 생략할 수도 있다. 법규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우 공식적인 시장 의견 수렴과정을 생략하는 셈이 돼 공모 자체가 틀어질 수 있다.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이다.

때문에 요즘 스팩을 준비하는 증권사 실무자들은 '눈치 보기'에 열심이다. 다른 스팩이 앞장서 총대를 매주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스팩 1호'를 포기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사로잡혀 있다. 거래소와 금융위는 "주관사 자율에 맡길 문제"라며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해관계가 극명히 갈리는 발기인과 투자자들의 입장을 잘 조율해 최대한 양쪽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공모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며 "사실상 주관사의 조율 능력이 스팩의 공모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우증권·동양종금증권·미래에셋증권·현대증권이 스팩 설립 등기를 마쳤다. 이외에도 6~7곳의 증권사가 스팩을 준비 중이다. 첫 스팩은 이달 말 중 예비심사 청구→2월 말 예비심사 통과→3월 초 일반 공모 청약을 거쳐 이르면 3월 중순 증시에 상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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