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0년 10월 21일 13: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단조(鍛造, forging)는 철학적이다. 단단한 금속을 두드려 더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 그렇다. 외부의 힘을 이겨내야 내성이 생기는 건 우리 삶과 닮았다.
오세원은 단조장이다. 1967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7년 동안 은행을 다녔지만 그해 선친이 유명을 달리한 후 가업을 잇기로 했다.
물려받은 철제상은 큰 사업이 아니었지만 몇 년이나 고전했다. 돈 세던 손으로 망치를 잡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변신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먹고 살만 해졌을 때였을까. 마음속에 자그마한 공장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봉동에서 부도난 단조 공장을 찾았다. 거기에 두 번째 인생을 걸었다.
대학 동창 김기정이 없었다면 못했을 일이다. 페인트 장사를 하던 그는 공장이 불에 타 모든 게 절실했던 때다. 1969년 둘이 손잡고 만든 회사가 협진단철공업사다.
오세원이 영업을, 김기정이 기술을 맡았다. 말이 관리자였지 초반엔 둘 다 공장에서 망치를 잡았다. 부끄러울 게 없었지만 복잡한 제품은 꿈도 못 꿨다.
초짜들이라 좋은 점은 겸손하다는 것이었다. 손님들이 까다로운 주문을 해도 못한다고 거절을 안했다. 어떻게든 만들어보려는 궁리를 했다. 기술이 빠르게 늘었다.
70년대 중반에는 현대양행(만도)과 거래를 텄다. 협진단철에 가면 뭐든 만들어준다는 말이 돌았다. 만들다 막히면 기술이 좋은 일본에 가서 배웠다.
78년, 1000평 남짓이었던 개봉동 공장을 벗어나 안산 반월지구로 옮겼다. 공단 입주 1호 기업이었다. 규모도 세 배나 늘었다. 85년엔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한동안 잘 나갔지만 92년에 위기가 찾아왔다. 일본이 침체되고 미국 수출길이 막히자 20년 동안 적자 한 번 안냈던 오세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공장이 서고 현금이 말라갔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겠다고 홀로 상경했다. 헤매던 그가 재고관리에서 길을 찾았다. 토요타가 만든 TPS 관리를 물어물어 배웠다.
50대 말에 배운 관리법은 경영 준칙이 됐다. 월요일에 조회를 열어 일주일 목표를 얘기하고 대신 직원들의 의견을 구했다. 그가 깨달은 건 소통이었다.
2005년 일본 풍력발전 기업 나브테스코(Nabtesco) 관계자가 한국에 왔다. 한국 단조사에 풍력발전 부품 생산을 맡기려 했다. 다들 군침을 흘렸다.
그들이 원하던 샤프트(shaft)는 어려운 과제였다. 120 킬로그램 무게의 이 부품은 풍력 프로펠러가 받는 힘을 전달해야 했다. 높은 내구성이 관건이었다.
몇몇이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쉽게 부서져 버렸다. 나브테스코가 한국 기업엔 무리라고 여길 때쯤 이었다. 누군가 협진단철을 이야기 했다.
오세원이 인생의 세 번째 도전을 이 샤프트에 걸었다. 일흔의 나이에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와 직원들은 밤낮이 없었다. 농기계 단조품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 달 만에 제품을 내놓았다.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 빨리 만들었냐고 물었다. 오세원은 망치를 잡은 지 38년이 지났다고 답했다. 건조하지만 사실이었다.
5년 공급 계약을 맺었다. 그 후론 자동 연장되는 조건이다. 일본인들은 최선을 다한 사업 파트너에 그렇게 신뢰를 내보였다.
올해 오세원은 협진단철에 포메탈이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작은 공장으로 시작했지만 기술력으론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담아 영문으로 지었다.
기업 공개도 했다.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내 후년까지 공장을 충남 서산으로 옮길 계획이다. 1만2000평 부지는 지금보다 4배나 넓은 땅이다.
35년생인 오세원은 올해로 일흔 여섯이다. 기업을 일구며 맞은 풍파가 그를 단단히 만든 것일까. 은퇴할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단조 같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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